[한마당-김찬희] 윤리적 패션
입력 2013-11-24 18:39
2001년 조앤 K 롤링의 소설 ‘해리 포터’가 영화로 나왔을 때 단연코 관심은 남녀 주인공이었다. 숱한 소문과 추측 속에서 여주인공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역할은 연기 경험이 전혀 없던 엠마 왓슨에게 돌아갔다.
영화에서 야무진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줬던 그녀는 성인이 된 2010년 2월 현실에서도 똑 부러지는 파격을 선보였다. 모델료를 한푼도 받지 않고 친환경 공정무역 패션 ‘피플 트리(People Tree)’의 봄·여름 컬렉션에서 모델로 등장했다. 디자인 과정에서 고문 역할을 했는가 하면, 생산지인 방글라데시를 직접 찾아 현지 노동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왓슨이 입었던 100% 유기농 면으로 된 옷, 바나나 섬유로 만든 모자, 사탕 포장지로 만든 목걸이가 불티났다. 그녀는 “젊은 사람들이 패스트 패션에 휘말리지 말고 인류애와 환경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던졌다.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은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Brand, 디자인·제조·유통·판매 일괄형 의류)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SPA는 값싼 수백 가지 옷과 모자, 신발 등을 짧게는 1주일 단위로 바꿔가며 판매한다. 유니클로, 자라, H&M 등 ‘빅3’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국내 의류업계도 앞다퉈 SPA 브랜드를 내놓고 있다.
싸고 질 좋은 옷을 간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얼핏 ‘소비의 축복’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림자가 너무 짙다. 썩지 않는 인공섬유로 만든 ‘패션 쓰레기’는 환경을 위협한다. 여기에다 후진국 노동자 착취의 심각성은 지난 4월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의류공장 붕괴 사고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시 1100여명의 노동자는 좁은 공장 안에 갇혀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SPA 브랜드에서 파는 셔츠 한 장 값인 38달러를 월급으로 받으며 하루 15∼16시간씩 중노동을 했다.
어둠이 너무 짙어지자 ‘착하지 않은 옷’에 대한 반성도 커지고 있다. 친환경 공정무역을 내세운 ‘윤리적 패션(Ethical Fashion)’이 대안으로 등장했다.
패스트 패션이냐, 윤리적 패션이냐는 돈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인류애의 문제이기도 하다. 주머니가 얇은 이들에게 무조건 윤리적 패션을 강요할 수는 없다.
다만 1970년 11월 13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쳤던 전태일의 죽음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기업들이 눈앞의 이익에서 고개를 들어 ‘숲’을 봐야 하는 이유다.
김찬희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