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염운옥] 런던의 지하철

입력 2013-11-24 18:39


런던의 지하철은 동그랗다. 동그란 터널에서 열차가 들어오는 모습은 마치 치약이 튜브에서 짜져 나오는 것 같다. 기술상 문제로 열차가 달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만을 확보하는 터널링 실드 공법으로 시공했기 때문이다.

승강장에서 보면 ‘튜브’라는 애칭이 더없이 잘 어울린다는 것을 실감한다. 런던 튜브는 100살을 훌쩍 넘겼다. 1863년 1월 9일 첫 열차가 패딩턴에서 패링턴 스트리트까지 6.4㎞를 달린 지 올해로 150주년을 맞았다. 한국 최초의 지하철은 1974년 8월 15일. 서울역과 청량리 구간이 첫 운행이었다. 세계 최초인 런던 지하철보다는 111년 늦었다.

오래된 런던 튜브는 잦은 고장과 보수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어 런던 시 당국은 현대화 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해 오고 있다. 지난 11월 21일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은 주말 24시간 지하철 운행을 골자로 하는 ‘21세기 튜브 서비스’ 계획을 밝혔다. ‘나이트 튜브(night tube)’, 주말 24시간 지하철 운행은 존슨 시장이 추진해 온 공약 사항이었다. 런던교통국(TfL)은 2015년부터 런던 시내 노선에서 금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밤까지 지하철을 24시간 운행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초기에는 센트럴라인과 피카딜리라인, 노던라인의 차링크로스 브랜치, 주빌리라인, 빅토리아라인 등 5개 라인에서 실시하게 된다. 이 경우 전체 지하철의 60%가 주말 24시간 운행에 들어가며, 139개 지하철역이 포함된다.

지하철이라는 아이디어는 150년 전 ‘철도를 런던 시내에 어떻게 도입할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혼잡하고 비위생적인 도심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한 부르주아의 새 주거지 교외지역과 도심을 빠르게 연결하기 위해서는 철도가 필요했다. 하지만 런던의 땅값은 너무 비싸 지상철도 건설은 불가능했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지하공간 활용이었다. 개통 당시에는 증기기관차가 달렸기 때문에 터널 안에 매연이 자욱했고, 유황 냄새를 빼내고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유입시키기 위해 터널 위로 군데군데 구멍을 뚫어야 했다.

주말 24시간 운행 도입 계기는 150년 전과는 정반대다. 런던 인구는 빠져나가기는커녕 도심 재개발과 글로벌화의 영향으로 증가하고 있다. 현재 약 830만명인 런던 인구는 2030년 1000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대해지는(bigger)’ 런던을 보다 ‘살기 좋은(better)’ 런던으로 어떻게 바꿀까. 런더너들의 고민이다. 존슨 시장은 런던 역사상 처음으로 24시간 지하철 운행하면 야간시간대 경제활동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이는 런던이 거주와 업무, 여행, 투자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대 글로벌 도시라는 명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모두가 이 계획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24시간 운행이 유인 매표소 전면 폐쇄와 신용카드 지불 시스템 도입과 함께 진행된다는 데 있다. 런던교통국은 비용 절감을 위해 240곳의 지하철역에 있는 모든 유인 매표소를 없애기로 했다. 5750명에 이르는 지하철역 근무 인력 가운데 750명이 구조조정된다. 영국 최대 철도해운노조(RMT)의 밥 크로 대표는 24시간 운행 계획은 무자비한 구조조정과 안전불감증을 감추기 위한 연막술에 불과하다고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다. 인원 감축은 사고나 테러 같은 긴급 사태가 발생했을 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하철 현대화를 인원 감축을 통한 비용 절감에 이용하는 존슨 시장의 태도는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존슨 시장은 ‘자전거 시장’이란 별명으로 불릴 만큼 자전거 타기를 권장해 왔다. 그러나 안전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자전거 타기운동은 자전거 통근자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11월에만 2주일 동안 6명의 자전거 이용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번에는 지하철 24시간 운행으로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99%의 런던 시민을 행복하게 하는 ‘나이트 튜브’가 되기 위해서는 지하철의 공공성과 안전성이 무엇보다 우선시돼야 할 것이다.

염운옥 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