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콜 총리가 발표한 ‘통일 독일을 위한 10개항 프로그램’
입력 2013-11-24 17:12 수정 2013-11-24 23:27
통일을 이루겠다는 확고한 의지 대외에 공식 천명
서독 정부는 헬무트 콜 총리가 1989년 11월 28일 의회에서 ‘통일 독일을 위한 10개항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로 통일을 이루겠다고 대외에 천명했다. 통일의 목표와 계획이 명시됐고, 이후 서독이 통일 과정의 주도권을 잡게 됐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 발표는 독일 통일의 중요한 분수령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독은 활발한 동·서독 교류를 추진하면서도 명시적으로 “통일을 이루겠다”고 밝힌 적이 이전에 단 한 번도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유럽에서 독일 통일에 대한 논의가 금기시돼왔기 때문이었다. 통일 논의가 독일 민족주의를 부추겨 전 세계의 평화를 또다시 깰 수 있다는 염려가 팽배했다. 하지만 서독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3주가 지난 1989년 11월 28일 ‘통일 독일을 위한 10개항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베를린 장벽 붕괴를 통일로 연결시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프로그램의 골자는 “동독과의 정치적 협상 목표가 독일의 통일이고, 독일 통일은 유럽 통합의 큰 틀 내에서 이뤄진다”는 것이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1∼5항에서는 동독 지원과 동·서독 협력 강화, 동독에 자유·비밀 선거 도입을 담았다. 6∼7항은 범 유럽 발전의 틀 속에서 독일 통일이 이뤄져야 하고, 개혁적인 동유럽 국가들도 다 함께 유럽 통합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8항과 9항은 각각 유럽안보협력체제 강조, 군축과 군비통제였다. 끝으로 10항은 이런 단계를 밟아 유럽 평화가 진일보하고, 독일 민족은 자율적 의사에 따라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었다. 서독은 이후 통일·외교 정책을 집행하면서 이 프로그램의 원칙을 철저히 유지했다. 특히 독일 통일이 유럽 통합을 촉진시킨다는 점을 널리 알려 하나가 된 독일이 유럽 평화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널리 설파했다.
통일 직전에는 통일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 확정,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다. 주변국들은 패전 후 오더-나이세 강 동쪽 지역을 폴란드에 뺏긴 독일이 통일 후 영토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서독 내부에서도 전체 영토의 25%나 되는 오더-나이세 강 동쪽 지역을 되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끊이지 않았다. 또 통일 독일의 나토 잔류는 소련이 극구 반대했다. 서독은 1990년 5월부터 4개월 동안 네 차례 열린 ‘2+4 회담’을 통해 ‘독일 문제에 관한 최종 조약(2+4 조약)’에 합의하며 두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다. 오더-나이세 강 동쪽 지역을 포기하고 나토 잔류가 결정되면서 통일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이 제거됐다.
베를린=모규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