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統獨은 외교의 힘
입력 2013-11-24 17:45
‘독일 통일은 외교의 힘이었다.’
독일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제2차 세계대전 4대 전승국의 동의 없이는 통일을 이룰 수 없는 국가였다. 하지만 서독 정부의 치밀하고 과단성 있는 외교로 이들 전승 4대국의 동의를 이끌어냈고 결국 민족 통일을 이룩했다.
지난달 28일 베를린 동맹국 박물관에는 독일에서 과거 4대 전승국들의 힘이 막강했음을 보여주는 전시물이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전승국들이 전쟁에서 사용한 포탄, 총, 차량뿐 아니라 전쟁 직후 독일과 베를린을 각각 4곳으로 나눠 분할통치했을 때 독일 국민들이 사용했던 통행증도 눈에 띄었다. 전쟁에서 독일이 패하고 전승국들이 승리했을 때 발행됐던 신문과 당시 사진 등도 전시돼 있었다.
독일은 스스로의 힘으로 통일을 이룰 수 없는 나라였다. 서독의 경우 1952년 서방 3개국(미국 영국 프랑스)과 독일 조약이 체결돼 3개국 군대의 주둔 권리를 인정했다. 특히 조약에는 ‘독일과 베를린에 전체에 대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이 책임과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해 독일 통일을 위해선 반드시 이들 3개국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동독도 동유럽 공산국가들의 군사동맹 기구인 바르샤바조약기구(WTO) 규정에 따라 동독 내 통합사령부 설치와 소련군 영토 주둔권을 인정했다. 소련의 동의 없이는 통일이 불가능했다. 독일 통일 분위기가 무르익던 1980년대 후반 미국을 제외한 전승 3개국은 독일 통일을 바라지 않았다는 게 여러 사료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서독은 이런 난관을 적극적인 외교로 돌파했다. 헬무트 콜 전 서독 총리와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서독 외무장관은 당시 서방 세계를 이끌던 미국을 이용해 영국 프랑스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또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던 소련에 대해선 막강한 경제력을 통한 협상을 통해 우군으로 만들었다. 양창석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은 24일 “서독은 동독 주민들의 신속한 통일 요구, 동독의 상황 악화 같은 독일 내부 동력을 전략적 카드로 활용해 주변국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베를린=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