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런던서 30년 종살이 여성 3명 극적 구출
입력 2013-11-23 05:28
지난 10월 18일 한 아일랜드 여성(57)이 자선운동 단체 ‘프리덤 채리티(Freedom Charity)’에 전화를 걸어왔다. 결혼 피해를 고발한 BBC 방송의 다큐멘터리에서 이 단체 회장의 인터뷰를 보고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포함해 여성 3명이 최소 30년 이상 감금당하고 있다는 내용을 전했다. 이 여성은 후환이 두려워 집 주소조차 밝히지 못했다. 전화를 받은 프리덤 채리티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과 단체는 조심스러운 구출작전을 전개했다. 경찰이 발신자 추적으로 감금 지역을 찾아내는 한편 단체 관계자들은 피해자를 안심시키면서 신뢰를 쌓았다. 감시가 소홀해질 때 피해자 스스로 집 밖으로 나오기로 약속을 받았다.
1주일이 지난 10월 25일. 아일랜드 여성과 영국 국적 여성(30)이 차례로 집 밖으로 나와 경찰을 만났다. 감금 지역도 알려줬다. 런던 남부 램버스 지역의 평범한 주택가. 경찰은 몰래 그곳에 가서 말레이시아 국적 여성(69)도 구출했다.
이어 경찰은 21일(현지시간) 오전 7시30분 감금 주택을 급습, 각각 67세인 외국 국적의 남녀를 강제노역, 납치·감금 혐의로 체포했다. 이들은 1970년대에도 체포된 전력이 있으며 여권은 경찰이 압수했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22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내년 1월까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다.
런던경찰청은 이날 가정집에서 30년간 노예생활을 해온 여성 3명을 구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재 정신적 충격으로 외부와 격리된 채 전문가의 치료를 받고 있다고 경찰은 덧붙였다. 피해 여성은 혈연관계는 없으며 30대 여성은 ‘노예상태’로 태어났거나 유아시절 납치돼 평생을 외부와 접촉 없이 감금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가해자나 피해자의 구체적인 신원은 드러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을 주인으로 모시며 집의 허드렛일을 하거나 종살이를 했다. 이들이 성적으로 학대받았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들은 대부분 일상을 집에서 보냈지만 가끔 주인의 감시 아래 외출 등 제한된 자유도 허락받았다.
경찰은 외국 국적의 일부 피해자가 어떻게 영국으로 들어와 감금을 당했는지, 감금생활이 장기간 지속된 이유, 3명의 피해자가 어떤 관계인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추가 피해자는 없다고 경찰은 덧붙였다.
케빈 하일랜드 인신매매 수사팀장은 “피해자가 30년이나 노예생활을 강요받은 사건은 전례가 없다”며 “30년간 외부에 노출된 적이 없어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피해자의 정신적 안정이 우선이라고 보고 본격적인 수사보다는 치료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니타 프렘 프리덤 채리티 회장은 “그들이 집 밖으로 나와 나를 만났을 때 포옹했다”며 “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계속했다”고 전했다.
영국 언론은 이번 사건이 지난 5월 여성 3명을 납치해 10년간 학대하고 성폭행한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발생한 아리엘 카스트로 형제 납치·감금 사건과 유사하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