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김치 삼국지

입력 2013-11-22 18:27


며칠 전 서울광장에서 열린 ‘사랑의 김장 나누기 축제’에는 무려 3000명이 참가했다. 소외계층과 함께 나누는 이 같은 ‘김장문화’는 다가오는 12월 초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리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될 예정이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직전의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전 국민이 약속이라도 한 듯 집중적으로 김장을 하는 풍습은 다른 문화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김장문화는 도시화와 핵가족화 속에서도 맥을 이으며, 김치냉장고라는 새로운 가전 기술을 낳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유네스코 본부는 마치 김치가 인류유산에 등재되는 것처럼 잘못된 사실이 계속 전파될 경우 김장문화가 인류유산에 최종 등재되는 게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고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김치 삼국지’와도 연관이 깊다.

김치는 독자적인 우리 음식이지만 세계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기무치다. 또한 중국에서는 김치의 원조가 쓰촨의 ‘파오차이’라는 주장과 함께 파오차이를 전 세계 식품으로 등극시키려는 ‘김치공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김치를 기무치나 파오차이와 연결시키는 건 우리로선 좀 억울하다. 기무치는 원래 일본의 전통 야채절임 음식인 ‘아사쓰케’와 비슷하다. 이를 김치처럼 바꾼 것이 기무치인데, 발효 방식은 전혀 다르다.

김치 같은 자연발효가 아니라 기무치는 사과산과 구연산 등의 인공 첨가물을 넣어 신맛을 낸다. 그 이유는 자연발효가 일어난 뒤 자연스레 생기는 신맛을 일본인들이 아주 싫어하기 때문이다.

쓰촨성에서 유래한 파오차이의 경우 배추 무 당근 등의 주재료에 고추 생강 마늘을 첨가한 후 소금 식초 설탕 바이주(白酒)를 섞어 만든 물에 담가 고온 발효시킨다. 때문에 저온 발효로 숙성시키는 김치와 달리 2∼3일이면 바로 먹을 수 있다.

이에 비해 김치는 삼투압 원리를 이용해 배추를 소금에 반나절 정도 숨을 죽인 다음 본격적인 조리에 들어간다. 이때 소금은 양념의 맛이 채소 조직 내에 잘 침투되고 김치가 발효할 때 좋지 않은 균의 생성을 막는 작용을 한다.

그 후 각종 양념과 재료를 섞어 버무리는데 여기서 우리 조상들은 미생물들을 위한 배려도 빠뜨리지 않았다. 젓갈과 쌀가루 등을 넣어 김치를 발효시키는 미생물의 먹이가 되게끔 한 것. 이 같은 지혜는 다른 국가의 저장식품과는 전혀 다른 김치만의 특징이다. 미생물을 위한 작은 배려가 다른 절임음식보다 훨씬 많은 유산균을 생성시키듯 김치의 우수성은 공동체를 배려하는 김장문화 속에도 숨어 있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