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에 밀려난 졸업인증제… 대학들 구직난 반영 논문·졸업시험 간소화
입력 2013-11-22 18:05
학사논문, 졸업시험 등 국내 대학의 졸업인증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논문 대신 토익 성적표만 제출하라거나 초보적 지식을 묻는 간이시험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 측은 취업난에 고생하는 졸업생을 위한 배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입학은 쉽고 졸업이 어려운 외국 명문대학에 비해 지나치게 ‘취업 공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졸업인증제도는 대학 단과대별로 다르다. 가장 간편하게 졸업시켜주는 곳은 경영학부다. 성균관대 경영학과 김모(28)씨가 지난 8월 졸업을 위해 제출한 것은 토익 성적표가 전부였다. 학교는 990점 만점인 토익 시험에서 780점 이상만 받아오면 모두 졸업장을 줬다. 이마저도 사법고시, 공인회계사 시험 등 국가고시에 1차 합격하면 면제됐다. 서울대 경영학과는 학사논문 대신 A4용지 10장 안팎의 경영실적 사례 보고서를 받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는 토익 성적표와 한자 자격증을 제출하면 된다.
경제학부는 주로 원론 수준의 간단한 졸업시험으로 대체한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박모(27)씨는 올 초 졸업하면서 전공 종합 시험을 쳤다. 문제들은 대개 1∼2학년 때 배우는 경제학원론 수준이었다. 건국대 경제학과 이모(25·여)씨도 졸업 논문 대신 시험을 치렀다. 이씨는 “취업 때문에 정신이 없어 대충 봤는데도 무리 없이 졸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문대나 사회과학대 등 졸업 논문 제출이 의무화된 학과도 학생들의 ‘반칙’을 눈감아 주고 있다. 지난 8월 서울의 한 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원모(28)씨는 2월에 졸업한 친구 논문을 베껴냈다. 각주와 참고문헌까지 똑같았지만 무난히 통과됐다. 모 대학 영문학과 4학년 학생(30)은 인터넷 논문 사이트에서 3500원을 주고 논문을 구입해 내년 2월 졸업용으로 제출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주변에 돈 주고 논문 사는 친구들이 많아 주제가 겹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졸업 대상자는 교수 조교 학생들 앞에서 졸업논문 발표회를 갖고 평가를 받아야 했다. 졸업시험도 내용이 어려워 ‘재시험’을 치르는 학생이 속출했다. 그러나 요즘은 졸업 절차가 지나치게 간소화되면서 원칙을 지키려는 교수와 학생 간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 대학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학사논문 심사 후 부적격 판정을 받은 학생이 찾아와 취업하느라 바쁜데 논문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으니 그냥 통과시켜 달라고 한 적도 있다”며 “논문은 4년간의 공부를 정리하는 상징성을 갖는데 최근에는 ‘귀찮은 것’으로 치부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