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은 입시, 한쪽선 화투판… 같은 교실 너무 다른 두 모습
입력 2013-11-23 05:35
서울 A고교의 고3 교실에서는 수능이 끝난 뒤부터 매일 화투판이 벌어진다. 수능 이후 할 일이 없어진 수시 1차 합격생들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시작된 모바일 게임 경쟁이 오프라인 포커·훌라 게임으로 번지더니 한 판에 100원씩 거는 ‘섰다판’까지 등장한 것이다(사진). 이 학교 김모(18)군은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 눈을 피해서 하기 때문에 걸릴 일이 없다”며 “등교 이후부터 하교 때까지 본격적으로 화투를 치려고 집에서 담요까지 준비해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반면 당장 이번 주말 수시모집 대학별고사를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학생들은 면접이나 논술 준비에 여념이 없다. 24일 경희대 입학사정관전형 면접고사를 앞둔 황모(18)군은 “자기들 입시는 끝났다고 교실에서 도박까지 하며 시끄럽게 하는 애들이 꼴도 보기 싫다”며 “수능 전만 해도 같은 길을 가는 친구였지만 이제는 아는 척도 안 하는 남남”이라고 눈살을 찌푸렸다.
수능 이후 ‘같은 교실, 너무 다른 양상’을 보이는 학생들 때문에 고3 담임교사들은 학생 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능 후 학생들의 대입 일정이 일부 수시와 대다수 정시로 양분됐던 과거와 달리 학생별로 입시 일정이 제각각인 데다 지원한 수시 차수별로, 4년제냐 2년제냐에 따라서도 ‘경우의 수’가 나뉘기 때문이다.
오전 9시 등교해 낮 12시 하교 때까지 반 전체 학생들이 비디오만 감상하던 ‘수능 후 고3 교실=시네마천국’이란 공식은 옛날 얘기다. 학생 상당수가 학교의 묵인 아래 논술고사 준비를 핑계로 교실을 비우는 현실도 고3 교실의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서울 강북의 S고 3학년 담임 김모(28·여) 교사는 “누구는 놀고 누구는 당장 이번 주에 면접이 있고 한 교실 학생들이지만 대입 일정이 각각 다르다”며 “특히 먼저 합격한 아이들로 인해 위화감이 조성되지 않도록 지도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일부 학교는 화투판이 벌어지거나 주구장창 영화만 보는 기존의 풍경을 없애기 위해 성교육이나 경제교육 강좌를 열고 외부 체험학습을 기획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으나 이 역시 대입 일정이 다른 학생들의 참여 저조로 호응을 얻기는 어렵다.
서울시교육청 교육과정정책과 관계자는 “수능 후 학사 및 생활지도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진로교육이나 교양강좌를 권장하고 학원에 가는 학생들의 출석을 인정하지 말라고 공문을 내려보내 지도를 하고 있다”며 “학년 말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학생들이 도박 등 일탈행위를 하지 않도록 사전 예방에도 신경을 쓰겠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