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이족 청년, 한국서 교수되다… 케냐 출신 외국인 교수 벤슨 카마리
입력 2013-11-22 17:25 수정 2013-11-22 14:05
앳된 얼굴이었다. 짧은 머리에 단정한 양복 차림은 ‘신입’의 면모를 그대로 풍겼다. 올해로 한국 생활 6년차. 그는 교회 청년 결혼식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웃었다. 최근 부산시 동삼동 고신대에서 만난 아프리카 출신 최연소 외국인 교수, 벤슨 카마리(30)의 눈빛은 반짝였다.
카마리 교수는 지난 8월 20일 고신대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고 9월부터 교수로 임용돼 현재 15명의 외국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교육론을 비롯해 논문 지도를 병행하고 있다. 그는 고신대 교수들 사이에서 글 좀 쓰는 교수로 통한다. 이미 국내 영자신문 등에 몇 차례 칼럼을 기고했고 학술대회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갓 서른을 넘긴 그는 어떻게 교수가 됐을까.
가난한 마사이 청년의 한국행
그의 고향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서쪽으로 300㎞ 떨어진 가난한 동네 키탈레이다. 케냐 42개 부족 중 하나인 엘곤 마사이족 출신인 그는 어릴 적엔 맨발로 뛰어놀았다. 엘곤이란 높은 산을 의미한다.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마사이족은 사바나라 불리는 초원지대에 사는 부족인 반면 엘곤 마사이족은 고지대에서 살았다.
엘곤 마사이는 칼렌진 부족으로 불릴 정도로 이들과 유사점이 많았다. 칼렌진족은 키가 크고 뛰기를 좋아해 마라톤에 능하다. 케냐 마라톤 선수의 98%가 이 부족 출신이라고 한다. 그 역시 달리기를 좋아했지만 공부를 더 잘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홀어머니와 함께 농사일을 거들며 학교에 다녔다. 신발 한 켤레 살 돈이 없어 중학교 때까지 맨발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눈물과 기도로 공부에 집중, 중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고 고등학교를 거쳐 나이로비에 있는 기독교대학인 데이스타(Day Star) 대학에 입학했다. 데이스타는 ‘샛별(morning star)’이란 의미다. 그는 이 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그가 한국 땅을 밟은 것은 2006년 한국의 고신대와 데이스타대가 자매결연을 맺으면서다. 똑똑했던 그는 김성수 고신대 총장의 권유로 교환학생으로 오게 됐다. 당시 그는 한국을 몰랐다. 남한과 북한을 구별하지 못했고 삼성 스마트폰 정도만 알았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한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한국을 선택했다.
“모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새로운 세상과 문화를 경험하고 싶었거든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미국이나 유럽은 익숙하지만 아시아, 특히 극동의 한국은 미지의 세계였거든요.”
한국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지금이야 한국 음식에 익숙해졌지만 처음엔 아예 입에도 못 댔다. 일주일은 물만 먹었다. 생선과 매운 음식은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렇게 1년 만에 공부를 마치고 돌아갔다. 그는 졸업식에서 학업우수상, 지역사회 봉사상 등 4개상을 휩쓸었다.
그가 다시 고신대 대학원으로 온 것은 김 총장의 추천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식 때 특별 강연자로 찾아온 김 총장이 유학을 권했다. 총명했고 믿음도 좋았던 그를 알아본 것이다.
기독교세계관 가르치는 교수 되고 싶어
카마리 교수에겐 스승이 많다. 케냐 성공회교회 장로였던 할아버지를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던 그는 고교 2학년 때 기독교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꿈을 꾸었는데 구덩이에 빠져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이었다. 예수님처럼 보이는 흰옷 입은 사람이 그를 구하려고 나타났지만 그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 중간에 공간이 있어서 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 후 청소년 수련회에 참석했던 그는 설교하던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다. 믿음에 관한 설교였는데 꿈 내용과 신기하게 겹쳤다. 우리 내부의 여러 가지 생각 때문에 수준 높은 믿음에 이르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설교는 마치 카마리 교수를 향한 것 같았다. 그때 이후 그는 회개와 기도를 통해 도약하는 믿음을 경험했다. 기독교대학으로 유명한 데이스타대에 입학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수련회 목사님은 지금도 그에겐 스승이다.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한 그가 대학원에서 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꾼 것은 교환학생 시절 호주 출신 리처드 에들린 전 고신대 교수를 만났기 때문이다. 에들린 교수는 학생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했는데 그때마다 교육의 중요성을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넘쳤고 카마리 교수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특히 기독교세계관과 관련된 에들린 교수의 말은 처음 듣는 얘기가 많았다. 신앙생활 따로, 학교생활 따로였던 그에겐 쇼킹했다.
“만물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골로새서 1장 16∼20절을 보면 ‘만물’이라는 말이 7번이나 등장합니다. 크리스천은 이것은 거룩하고 저것은 세속적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선합니다. 교육은 이러한 기독교세계관을 형성해줄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그는 어릴 적 부족 전통과 변화에 대해서도 말했다. 엘곤 마사이족 남자 청소년들은 16세가 되면 성인식의 일환으로 할례를 받는다. 또 1∼2개월을 가족과 떨어져 살며 집단 훈련을 받는다. 이 과정을 통해 진정한 마사이 전사로 태어나는 것이다. 남자들은 22세까지 각종 훈련을 거치며 가족과 집, 이웃을 보호하는 법을 익히고 인생을 배운다.
카마리 교수도 이 과정을 그대로 거쳤다. 하지만 기독교 집안인 관계로 일부 훈련은 생략하고 대신 성경을 공부했다고 한다. 케냐가 복음화되면서 성인식도 변한 것이다. 그는 “기독교 복음이 특정 문화에 들어오면 변혁을 통해 문화가 바뀌듯 의식도 기독교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크리스천은 모든 일을 기독교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부산 삼일교회에서 영어예배와 성경공부를 맡고 있는 그는 한국교회를 향해서도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교회는 매우 강력하고 부유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의 교육 인식은 역설적이게도 기독교적이지 않습니다. 케냐도 마찬가지인데요. 하나님은 부모에게 자녀 교육을 맡기셨지 학교제도에 내버려두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유엔아동권리도 부모에게 교육의 책임이 있다고 말합니다. 학생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집이나 교회가 아니라 학교나 학원 등에서 보내는 게 안타깝습니다.”
그는 교수로서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교육을 해 나갈 계획이다. “한국이든 케냐든 우리가 사는 세계는 매우 강한 생각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크리스천은 세상의 사고방식에 거슬러 살아야 합니다. 소금과 빛이니까요.”
부산=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