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플 특허소송 ‘1막2장’] 삼성 “이제부터 시작”-애플 “얼마든지 오라”… 이젠 로비戰

입력 2013-11-23 05:51


전세계 법정에서 뜨겁게 벌어지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전쟁은 미국 워싱턴 정가를 둘러싼 로비전으로 확대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지난 3분기 대미(對美)로비 금액은 100만 달러를 넘어서며 분기별 사상 최고치를 다시 한 번 경신했다. 하지만 애플 역시 로비를 강화하면서 삼성전자의 대미로비 금액은 이번에도 애플을 따라잡지 못했다.

삼성전자의 대미로비 강화는 특허전쟁 때문이라는 해석이 정설이다. 삼성전자의 대미로비 금액은 지난해 1분기만 해도 1만 달러 수준이었다. 뒤늦게 정치권에 호의를 베풀기 시작한 삼성전자를 바라보는 여론은 엇갈린다. 실적에 비해 미미한 액수라며 ‘용미론(用美論)’을 칭찬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미국 기업이 자국 정치권에 후원하는 것과 똑같이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

◇로비도 ‘큰손’ 삼성전자=22일 미 상원의 로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총 112만 달러를 미 의회 등 워싱턴 정가의 후원금으로 건넸다. 삼성전자 본사가 81만 달러를 썼고, 2008년 이후 로비가 거의 없던 삼성전자아메리카(삼성전자의 미국 현지법인)가 31만 달러를 지출했다. 미 상원은 관련법에 따라 세계 각 기업과 단체에서 전달받은 정치후원금 내역을 분기별로 공개하고 있다.

워싱턴에 푼 112만 달러는 미 상원이 삼성전자의 대미로비 내역을 공개하기 시작한 1999년 이후 최고 수준의 로비 금액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에도 85만 달러로 사상 최고액을 경신했었다. 지난해 상반기 1만 달러만을 로비 금액으로 썼던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부터 계속 20만 달러를 넘게 지출하고 있다. 이번 3분기와 4분기에 쓴 액수만 지난해의 3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삼성전자는 현재 애플뿐 아니라 에릭슨과도 특허침해 맞소송이 걸려 있고, 월풀의 제소로 세탁기에 반덤핑 제재를 받고 항소한 상태다. 이런 삼성전자가 로비를 하는 목적은 선명하다. 삼성전자는 미 상·하원, 미 상무부 국제무역청(ITA)을 상대로 한 로비의 쟁점을 ‘지식재산 침해(IP infringement)’와 ‘특허풀(Patent pools)’이라고 신고하고 있다. 특허풀이란 여러 특허권자가 각자 보유한 특허를 취합해 공동의 라이선스를 갖게 하고, 로열티 수입을 배분하는 제도다. 삼성전자아메리카는 이 칸에 ‘특허소송 개혁(Patent litigation reform)’이라고 적어 넣고 있다.

삼성전자는 로비 금액의 대부분을 로비 전문 법무법인인 ‘에이킨 검프(Akin Gump)’를 통해 미 정치권에 건넸다. 워싱턴 백악관 인근에 위치한 에이킨 검프는 지난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추락사고가 발생한 아시아나 항공기의 제조사 보잉을 포함, 시티그룹, AT&T, 엑손모빌, 월트디즈니 등 굵직한 기업들을 고객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 로펌의 수석파트너 변호사인 한국계 김석한 변호사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무료 변론을 자처하고 나서기도 했다.

◇기세등등 애플은 뭐가 꿀려서=특허권 침해를 확신한다는 애플도 삼성전자의 로비전을 견제하고 있다. 애플은 3분기 115만 달러를 지출했다. 분기마다 60만 달러 안팎을 정치권에 건넸지만, 올해 들어서는 1분기에 90만 달러, 2분기에 87만 달러를 쓰더니 3분기에 삼성전자와 함께 110만 달러를 넘겼다. 지난해부터의 총액 역시 546만 달러로 삼성전자(318만 달러)를 상회한다.

애플의 로비 목적은 표면적으로는 삼성전자보다 좀 더 다양하지만, 상당 부분 특허전쟁과 관련돼 있다. 최근 외신들은 “애플이 지난해부터 국제무역위원회(ITC)의 특허분쟁과 특허제도 개혁 로비를 위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와 법무부를 상대로 250만 달러를 썼다”고 폭로했다. 스티브 잡스가 최고경영자(CEO)로 있을 때는 워싱턴 정가에 로비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높은 평판을 유지했지만, CEO가 교체된 뒤에는 세금 회피 문제가 불거지고 삼성전자의 추격이 거세져 애플의 정책이 바뀌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애플의 로비가 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수입금지 결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삼성전자의 대미로비 강화는 이러한 애플의 로비에 대응한 정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꾸준히 매 분기 1만 달러씩 대미로비를 하고 있다”며 “미국을 합리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권장돼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