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존 F 케네디
입력 2013-11-22 18:30
일본이 요즘 존 F 케네디(JFK) 전 미국 대통령의 장녀인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 대사에게 푹 빠져 있다는 소식이다. 케네디 대사가 지난 19일 아키히토 일왕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기 위해 마차를 타고 도쿄 왕궁으로 가는 길목에는 4000여명이 나와 환호를 보냈다.
아베 신조 총리는 20일 총리 공관에서 케네디 대사와 이례적으로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일본 언론들은 케네디 대사와 관련된 기사들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 이유를 놓고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심리 또는 ‘케네디 가문(家門)’에 대한 동경 때문이라는 등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아베 정부가 케네디 대사 부임 일정을 조기에 마치도록 배려한 데에는 JFK의 기일(忌日)을 염두에 둔 측면이 있다. JFK는 1963년 11월 22일 댈러스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총탄에 맞아 숨을 거뒀다. 암살범 리 하비 오스왈드는 이틀 뒤 구치소로 이송되던 중 연방수사국(FBI) 정보원인 잭 루비에게 살해됐고, 루비는 구치소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게다가 오스왈드의 부인은 최근 “남편은 미 중앙정보국(CIA)과 마피아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JFK 암살사건을 둘러싼 음모론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JFK의 CIA 개혁 구상을 저지하기 위해 CIA가 암살했다거나, 마피아 소탕령을 막기 위해 마피아가 거사에 나선 것이라는 등등.
훌륭한 가문, 준수한 외모, 강인한 성격을 바탕으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 자리에 오른 화려한 개인사(史)에 이어 죽음까지 드라마틱해 JFK는 단숨에 위대한 대통령 반열에 올랐다. 비록 1000여일 재임했지만 적지 않은 미국인들이 그를 존경하고 있다.
서거 50주기를 맞아 그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미국에서 진행 중이다. 안타깝지만 그의 위상은 하락 추세라고 한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극적으로 진정시켰다는 평가는 핵전쟁 위기를 부추겼다는 반론에 밀리는 형국이고,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공산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피그스만 공격의 실패도 다시 공격받고 있다. 외도행각도 새삼 거론되고 있다. JFK는 메릴린 먼로와 1962년 3월 휴양지인 팜 스프링스에서 이틀 밤을 함께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JFK는 어떤 대통령일까.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