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누가 유럽을 전도했나
입력 2013-11-22 17:43 수정 2013-11-22 19:15
예수님은 오늘날 목회자들처럼 한 곳에 정착하고 교회를 키워가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았다. 온 갈릴리를 여행하시며 복음을 전하는 순회전도 방식을 초기부터 적용하셨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 1:38) 이것은 중대한 결단이요 사역의 전환점이었다. 그 전날 밤 행하신 기적들로 사람들이 몰려오는데 주님은 그 좋은 자리를 버리셨다. 주님께서 갈릴리 바다 위를 하루 한 번만 걸어서 왔다갔다하셔도, 아니면 병든 자들을 치료만 하셔도 세상 사람들이 다 몰려올 것인데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 안정된 현장을 버리고 수입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순회전도자가 된 것이다. 그 시대에 여행과 노상 생활은 많은 어려움과 위험이 존재했다. 그러나 주님은 따르는 무리와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해 사셨다.
여기저기 떠돌며 사역
예수님은 자신만이 아니라 제자들도 같은 방식으로 살도록 훈련하셨다. 그들이 전국을 여행하며 가르치고, 귀신을 좇아내고 병든 자들을 고치게 하셨다(마 10:1). 이 일을 할 때 제자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 있었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마 10:9∼10) 제자들에게 자신이 여행하시며 사시는 것과 동일한 방식의 삶을 요구하신 것이다. ‘디다케’라는 문헌에 따르면 1세기 말까지도 순회전도자들은 돈 없이 다녔다. 교회가 그들에게 다음 방문지까지의 경비를 주면 그것에 의존해 다음 여정을 떠났다.
주님은 이 땅을 떠나실 때도 제자들을 모든 민족에게 보내셨다. 그들은 스승으로부터 배운 사역의 양식을 바꾸지 않았다.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는 여기저기를 떠돌며 사역했고, 열두 사도 중 어느 한 사람도 자기 고향에서 생을 마친 사람은 없었다. 후에 사도로 부름을 받은 바울도 끊임없이 여행을 하고 교회들을 개척했다. 이런 순회사역은 2세기 후반쯤 지역 교회 목회자들의 역할이 커지면서 뒷전으로 밀려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은 아니었고 5세기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에 의해 이 사역을 그대로 모방한 수도원운동이 일어났다.
북동 잉글랜드에서 살았던 패트릭은 16세 때 아일랜드 해적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갔다. 고난 가운데 믿음은 자라서 매일 새벽마다 끊임없이 기도하며 6년을 한결같이 성령의 권능으로 살았다. 어느 날 꿈에 “너는 집으로 돌아가라. 너의 배가 준비되어 있지 않는가!”라는 음성을 들은 후 귀향을 준비했다. 결국 320㎞를 걸으며 필사적인 탈출로 귀향길에 올라 남프랑스의 수도원에서 수도사가 되었고, 후에 조국에 돌아와 사제로 목회를 했다.
48세 되던 해 어느 날 패트릭은 꿈에서 아일랜드 사람들이 외치는 음성을 듣는다. “소년이여, 우리가 호소하네. 와서 한번 더 우리와 함께 살아주게나.” 패트릭은 이를 성령의 음성으로 듣고 432년 아일랜드 선교사로 파송받는다.
그의 선교단은 사제들과 신학생들, 두세 명의 여성을 포함하는 12명 팀이었다. 그들은 한 마을에 도착한 후 부족장의 허가를 얻어 근처에 수도원을 세웠고 주민들과 사귀면서 전도했다. 패트릭의 선교단은 한 부족의 개종을 위해 몇 달을 머물기도 했는데 그 모든 노력의 정점은 마을에 교회를 건립하는 것이었다. 새 교회에 제자들 중에 한 명을 사제로 임명해 남겨두었고 대신 그 마을 청년 한 명을 뽑아 다른 마을들로 데려가기도 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역한 패트릭은 28년간 700여개 교회를 세우고 1000명의 사제들에게 안수를 주었다. 아일랜드 전체 150개 부족 가운데 3분의 1을 개종시킨 것이다. 어느 정도 국내 복음화가 이루어지자 아일랜드 수도원들은 해외로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563년 콜룸바누스는 열두 제자들과 함께 스코틀랜드 서쪽 아이오나 섬에 수도원을 건립했다. 이 섬은 선교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선교센터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곳에서 스코틀랜드 북동부의 원주민 픽트족을 향해 한 명의 리더와 12명의 팀들을 지속적으로 파송하여 한 세기 안에 개종시켰다. 그 다음으로 선교팀은 영국 북동부로 향했다. 590년 콜룸바누스는 열두 명의 제자들과 함께 뱅골 수도원을 떠나 유럽 대륙을 향했다. 프랑스부터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에 최종 정착하기까지 콜룸바누스의 팀은 60개 이상의 수도원과 교회를 설립했다. 또 690년에 윌리브로드는 11명의 제자들과 아일랜드를 떠나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북쪽의 해안지대 대부분을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했다.
수도원은 복음을 전해준 통로
이렇듯 수도원은 유럽의 야만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기까지 중요한 통로 중 하나였다. 수도사들은 주님의 삶을 모방하며 그 사역 방식까지도 실행하는 사도들의 계승자였으며 그 열매들로 예수님의 방식이 매우 효과가 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수도사들은 개인 구원과 완성에만 몰두한 폐쇄적인 그룹이 아니었으니 세상을 외면한 사람들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김진하 (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