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자이 굼본즈반다 세계YWCA 사무총장 “여성이여, 존엄성 지키기 위해 분노하고 목소리 내라”

입력 2013-11-22 18:53


“불의한 상황에서 침묵은 선택사항(option)이 아닙니다. 우리에겐 여성폭력에 반대한다는 뜻을 세상에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랏자이 굼본즈반다(46) 세계YWCA 사무총장은 “몇 세기 동안 지속된 여성폭력이 근절되기 위해선 대중에게 외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성과 아동의 인권을 위해 21년간 인권변호사로 일해 온 그는 “여성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정의롭게 분노하고 목소리를 낼 때 잘못된 사회와 권력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또 교회는 여성폭력 추방을 위해 기도뿐 아니라 상담치료, 법률상담, 쉼터 등 대안을 제공하는 대사회적인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짐바브웨 출신인 굼본즈반다 사무총장은 1991년 자국의 여성변호사협회에서 일하며 여성과 어린이 폭력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 이들의 고통을 침묵할 수 없었던 그는 1년 뒤 인권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유엔여성개발기금(UNIFEM) 아프리카 지역상담관, 유엔아동기금(UNICEF) 인권담당관, 영국 세이브더칠드런 이사 등을 거친 그는 2007년 11월 세계YWCA 사무총장에 취임했다. 한국YWCA의 여성운동 지원과 WCC 부산총회 참석을 위해 방한한 굼본즈반다 사무총장을 최근 만났다.

그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이 이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굼본즈반다 사무총장은 “성적(性的)인 폭력뿐 아니라 군사력 확장 같은 사회적 갈등도 여성폭력을 야기한다”며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발생한 전쟁 피해자 가운데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이다. 이들 중 여성은 강간을 당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전쟁 중 여성폭력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굼본즈반다 사무총장은 여성 할례와 강제결혼 및 조혼 관습이 또 다른 형태의 여성폭력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습이 소녀를 비롯한 여성에게 성적 권리와 교육 기회를 빼앗고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그는 WHO 통계를 인용해 “약 1억3000만명에 달하는 이들이 여성 할례의 희생자로 살아가며 6000만명 이상의 여성이 18세 전에 강압적으로 결혼한다”며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한편 그는 최근 뉴미디어를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여성폭력을 우려했다. 그는 “점차 소셜미디어가 허위 사실을 퍼트려 인터넷에서 특정인을 괴롭히는 ‘사이버 불링(cyber bulling)’이나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가 이뤄지는 장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다양한 여성폭력의 원인으로 그는 성 불평등, 여성과 남성 간 권력의 불균형, 여성의 경제력 부족 등을 꼽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여성폭력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굼본즈반다 사무총장은 “세계YWCA는 잘못된 사회구조로 인한 여성폭력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교육을 통한 경제적 능력 향상 등의 방법으로 폭력으로 신음하는 여성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을 되찾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폭력 추방을 위해선 정부와 교회 등의 기관이 책임감을 가지고 여성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여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쉼터나 보호소를 마련하고 영적인 상담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은 교회밖에 없다. 단순히 기도하고 평화를 바라는 것은 교회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교회가 하나님의 정의에 부합하길 원한다면 실체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WCC 부산총회에서 알게 된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와 여성 북한이탈주민의 실상을 ‘용납되기 힘든 학대’라고 정의한 바 있는 그는 “이들 소식을 국제사회와 교회에 담대히 알려야 한다”고 했다. 굼본즈반다 사무총장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민족과 여성 전시관’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그냥 돌아갈 수 없었다”며 “우리의 입장을 담은 건의문을 작성해 세계 교회와 정부가 움직일 수 있도록 호소할 것이다. 또 양국 간 평화와 치유를 위해 한·일 YWCA와 협력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이다. 이에 세계YWCA는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