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병원에서 8년 봉사 '믿음의 나그네' 김정룡 개성병원 전 원장

입력 2013-11-22 10:14


“선교사에게는 모세의 기도하는 손과 아론과 훌의 돕는 손, 여호수아의 싸우는 손 삼박자가 다 필요합니다. 이 모두가 합력했을 때 비로소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승리)’를 외칠 수 있는 것 같아요(출 17:8~16).”

15년 넘게 ‘평신도 선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김정룡(55) 전 개성병원 원장의 작은 깨달음이다. 여호수아를 현장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로 비유한다면 모세 및 아론·훌 같은 기도와 재정적 후원자의 역할이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으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결핵예방·퇴치 활동을 벌이고 있는 김 전 원장을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만났다.

김 전 원장은 불혹의 나이에 인도 캘거타로 건너갔다. 아내와 함께 현지 대학의 연구원 겸 의료 선교사로 8년을 섬겼다. 이후에는 개성공단의 병원 원장으로 또 다시 8년 넘게 남북한 근로자들을 돌봤다. 그 중간에 10개월 남짓 서울 가리봉동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원장을 겸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결핵예방·퇴치 사업차 아프리카 땅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15년 넘게 월급봉투는커녕 전셋집도 없이 살아가는 그에게 물었다. “솔직히 생활이 불안하지 않느냐”고.

“믿음의 나그네는 불안해하지 않는다”며 그는 웃었다. 의대를 졸업하면서 그는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창세기 12장을 마음 속에 깊이 새겼다고 했다.

“언젠가는 저도 떠날 때가 반드시 오리라 생각했어요.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가겠다고 기도했지요.”

그에게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2005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개성공단에서 근무했을 때다. 그가 일하던 8년 동안 개성병원은 하루도 빠짐없이 문을 열었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2008년 7월) 때나 천안함 사태(2010년 3월), 연평도 포격 사건(2010년 11월) 등 남북 관계가 살얼음판을 디딜 때에도 병원 문은 닫히지 않았다.

“한 알의 밀알로 섬길 수 있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지난 4월 아디스아바바로 떠날 때에도 그는 순종하는 맘이 전부였다고 했다. 열대의학을 전공한 그는 “분명 이 곳에서도 미력이나마 제가 필요해서 하나님이 보내셨으리라 믿는다”며 “올해 말까지 있기로 했지만 더 있어야 한다면 순종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는 “하하하” 크게 웃었다.

그의 가족은 지금 뿔뿔이 흩어져 있다. “순종이 갈라놨다”고 했다. 김 전 원장은 아프리카 땅에, 간호사 출신의 아내 백혜복(54)씨는 인도 캘거타 국제학교 교사로 있다. 2명의 아들은 영국에서 살고 있다. 둘 다 아버지 같은 의사가 되기 위해 각각 노팅엄 의대와 킹스칼리지 치대를 졸업, 수련의 과정을 밟고 있다. 김 전 원장은 “하루 빨리 남북관계가 개선돼 북한 땅에서 청진기를 들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치면서 사족을 달았다.

“믿음의 나그네는 어디까지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뿐입니다.”

글.사진=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