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사건 공판] “우리의 首가 누구인가” “김일성” 답하는 가입 의식 거쳐
입력 2013-11-21 22:17 수정 2013-11-22 00:16
제보자 법정 증언 어떤 내용
내란음모 사건을 국가정보원에 처음 제보한 이모씨는 RO 조직이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해 북한 주장을 옹호하는 것에 회의를 느껴 제보하게 됐다고 21일 밝혔다.
이씨는 2010년 5월 “새 삶을 살고 싶다”며 국정원에 신고한 이후 2011년부터 지난 9월까지 RO 녹음파일 47개를 제공한 인물이다. 국정원에서 5차례, 검찰에서 4차례 조사를 받았으나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다.
1990년대부터 주체사상을 공부해 온 이씨는 2003년 지인을 통해 처음으로 RO의 예비조직 개념인 ‘학모’(학습모임)와 ‘이끌’(이념서클) 단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증언했다. 학모는 정치, 경제, 철학에 대해 공부하고 심화시키는 단계다. 이후 주체사상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면 이끌 대상자가 되고, RO 조직원 2명 이상의 추천과 가입식을 거쳐 RO 성원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RO가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해 남한 사회변혁운동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우리의 수(首)가 누구인가’ ‘나의 주체성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 ‘김일성’ ‘혁명가’라고 답하는 의식을 거친 뒤 2004년 RO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그는 “강령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변혁운동 실현, 자주민족주의 실현, 주체사상 연구·보급·전파였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씨는 RO가 3∼5명 단위로 나누어진 세포모임이 점조직화돼 있는 등 보안을 가장 중시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직원은 RO 얘기를 안 하는 게 철칙이어서 같은 세포모임이 아니면 (다른 세포모임의 조직원을) 잘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정기적으로 USB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교체하고 비폰(대포폰)을 사용했으며 모임이 있으면 ‘꼬리따기’(미행 따돌리기)를 위해 한두 정거장 미리 내리거나 차를 1㎞가량 먼 곳에 세우고 걸어다녔으며 보안을 위해 강령을 암기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석기 의원이 RO의 수장이라는 사실을 RO에 가입한 지 약 10년 만인 지난 5월에 알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5월 곤지암 모임과 서울 강연 때 수(首)는 수령 한 명이고, 이 의원은 남쪽 정치지도자 역할이라고 들어 대표임을 확신했다”며 “이 의원이 ‘바람처럼 모이고, 흩어지시라’고 지시할 때 대단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상급 조직원인 홍순석(통진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피고인이 이 의원을 표현할 때 ‘옛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핵심 남부 총책이고 (현재) 남부만 남아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홍 피고인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수원역 카페에서 만날 때 테이블에 신문을 놓고 기다리라는 지시를 받았고, 잠시 후 암구호인 ‘지역에서 오셨습니까’ 하길래 ‘중앙’이라고 답하고 만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씨는 2009년 10월 집행유예 기간 중 당뇨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던 상황에서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한나라당사 점거농성 단장을 맡으라’는 이상호(경기진보연대 고문) 피고인의 지시 이후 고민하다가 RO가 이듬해 3월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해 북한 주장을 옹호하는 것을 보고 회의를 느껴 제보했다고 설명했다.
수원=김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