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이 사장 가르치는 ‘역 멘토링’ 바람
입력 2013-11-21 18:16
영국 글로벌 유통업체 테스코의 필립 클라크(53·사진) 최고경영자(CEO)는 매달 한 번씩 사내 슈퍼마켓 정보기술조사팀 소속 직원 폴 윌킨슨(28)을 만난다. 정보통신(IT) 분야에 박식한 윌킨슨은 최신 IT 기술이나 지식, 트렌드를 ‘보스’인 클라크 CEO에게 소상히 알려준다. 경륜을 가진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직장생활 노하우를 알려주는 기존 멘토링과 정반대 모습이다. 일반사원이 고위 경영진의 멘토가 되는 이른바 ‘역(逆)멘토링(reverse mentoring)’이다.
클라크 CEO는 IT 기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법을 배우고 윌킨슨의 사고·생활방식 등을 경청하는 데 매우 열정적이다. 그는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덕분에 ‘젊은 감각’을 유지한다”고 흡족해했다. 무엇보다 회사를 경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클라크 CEO는 “윌킨슨과 대화하다 보면 앞으로 10년, 20년 뒤 테스코의 잠재고객이 될 젊은층의 소비취향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며 “요즘 20∼30대는 디지털 세대다. 이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멘토링의 시초는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CEO다. 1999년 CEO 시절 젊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감각을 갖추자는 취지로 실시했다. 이후 기업들 사이에서 꾸준히 도입돼오다 최근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가 확산되면서 다시 활성화되는 분위기다.
글로벌 컨설팅기업인 딜로이트 호주지점도 2010년 역멘토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캐서린 마일러시 역멘토링 담당자는 “디지털 세대인 멘토와 아날로그 세대인 멘티를 엮어주는 게 주된 일”이라며 “SNS 사용법처럼 차마 공개석상에서 물어보기 부끄러웠던 IT 정보를 1대 1 멘토링을 통해 습득할 수 있어 경영진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젊은 직원과의 소통을 통해 직장 분위기가 활기를 띠는 것은 덤이다.
역멘토링은 멘토인 젊은 직원에게도 유익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경영진과 대화하면서 경영 비전을 자연스레 습득하게 되고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이 고취될 수 있다. 윌킨슨은 “클라크 CEO와의 스킨십이 늘면서 비즈니스 시야가 확실히 넓어졌다”고 말했다.
미국 드렉셀대 교육학과 라자쉬 고쉬 조교수는 “역멘토링이 효과를 보려면 젊은 멘토는 나이 든 멘티가 주눅 들지 않게끔 세심해야 하고, 멘티 역시 멘토에게 도움을 주는 분명한 게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