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환 국새 의미는… 고종황제 자주 독립 의지 깃들어

입력 2013-11-21 18:04 수정 2013-11-21 22:14


대한제국 국새 등 인장 9점이 국내 반환될 수 있게 된 것은 한·미 수사공조가 일궈낸 두 번째 개가라는 점에서 한국전쟁 등 혼란기를 틈타 유출된 문화재의 환수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낳는다. 하지만 종전 60년이 되도록 유출·도난 문화재의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은 실정이라 주무 부처의 총체적 부실 관리 논란도 제기된다.

◇어떤 것들인가=국새는 황제지보 등 3점, 어보는 수강태황제보 1점, 나머지는 조선왕실 등에서 쓰던 개인 인장들이다.

국새는 왕(황제)이 외교문서 등에 실제 사용하는 행정용이다. 이에 반해 어보는 임금의 존호(왕이나 왕비의 덕을 기려 올리던 칭호) 등을 새긴 의례용 인장을 말한다. 이번에 돌아올 9점 중 가장 의미가 큰 건 국새 황제지보다. 고종이 대한제국 선포(1897년)를 계기로 제작했으며 황제가 직접 내려주는 관료임명장인 친임관칙지(親任官勅旨)에 사용했다.

또 다른 국새 중 유서지보는 지방 절도사나 관찰사 임명장에 사용했고, 준명지보는 왕세자 교육 관청인 춘방(春坊) 관원을 임명할 때 썼다. 유일한 어보인 수강태황제보(壽康太皇帝寶)는 통상 어보가 사각형인 것과 달리 팔각형으로 돼 있는 등 형태가 독특해 가치를 평가받는다.

◇압수 경위와 반환 절차는=미국 언론은 18일(현지시간)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관세청 수사국(HSI·이하 미 수사국)이 제보를 받아 이들 인장 9점을 샌디에이고의 한 가정집에서 압수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수사는 한국전에 참전한 미 해병대 장교의 사위가 인장의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골동품 가게를 찾았다가 덜미를 잡힌 게 단초가 됐다. 고인이 된 이 장교는 1950년 서울 수복 때 덕수궁에서 인장을 발견해 미국으로 가지고 온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덕수궁은 중공군과 북한군이 철수하면서 많은 문화재를 약탈해 가 버렸으나 이 인장들은 구덩이에 묻혀 있어 손에 넣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인장 반환을 위해 미 수사국은 조만간 공고 절차(3∼4개월)를 밟은 뒤 몰수를 위한 행정 작업에 들어간다. 이후 운송 방식과 포장 방법 등 구체적인 인수인계 방안이 협의돼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귀국까진 상당 기간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호조태환권 인쇄용 원판은 올해 1월 미 수사국에 의해 압수돼 9월에야 환수됐다.

◇의미는 뭔가=고종은 대한제국 선포 이후 대외적으로 자주독립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총 13점의 국새를 만들었다. 그간 국내에 확인된 것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3점뿐이었는데, 이번에 한·미 수사 공조로 3점이 새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나머지는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서준 주무관은 “황제지보 등 대한제국의 상징이자 정통성을 보여주는 문화재를 새롭게 확보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문화재 환수 노력을 강화하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환수를 위한 가장 기초 작업인 유출 추정 문화재 목록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대해 문화계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조선왕실이나 대한제국이 남긴 유물 목록과 현재 그 유물 소장처인 고궁박물관 목록을 비교하면 유출 문화재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그 대조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