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신의 직장 각광받다 댓글 여파 지원자 뚝… ‘취업 양지’에서 음지된 국정원

입력 2013-11-22 04:46 수정 2013-11-22 07:31


국가정보원 요원을 다룬 드라마 ‘아이리스’와 영화 ‘7급 공무원’ 등이 인기를 끌면서 대학에서 취업설명회까지 열리곤 했던 국정원 취업 열기가 최근 차갑게 식어버렸다. 인터넷 댓글과 트위터 등을 통한 대선 개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지원자가 크게 줄고 있어서다.

20일 오후 서울 종로 A학원이 개최한 ‘국정원 합격 설명회’에서 자신을 국정원 출신이라 소개한 B강사는 “한때 1만명에 달하던 국정원 지원자가 지난 8월 시험에선 5000명까지 줄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공식적으로는 응시자 규모도 대외비라며 확인을 거부했다. 학원 측은 경쟁이 그만큼 줄었으니 적극 지원하라는 취지에서 지원자 숫자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이 강사는 국정원 요원이 되는 훈련 과정과 근무 동향도 설명했다. 그는 참석자들에게 “담력훈련, 공수훈련 프로그램으로 합격 후 3개월이면 강철체력이 된다”면서 “단체로 마라톤 대회에도 나가고 해군특수전여단(UDT) 교관과 시합도 한다”고 했다. “요즘은 세계 모든 곳이 정보 수집 대상이라 해외 각지에 나가 있다”거나 “대외 담당 수사관도 국내 위험 요소를 파악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학원들이 이처럼 국정원 내부 정보까지 공개하며 수험생 모집에 나서는 것은 취업 열기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통상 6월 모집공고, 7월 원서접수, 8월 시험의 일정으로 채용한다. 대학 방학 기간인 겨울철이 학원 ‘성수기’다. 그러나 올해는 11월 들어서도 열기가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이날 설명회를 찾은 수험생도 60여명에 불과했다. 정모(28)씨는 “지난해 초부터 국정원 시험을 준비했는데 올 들어 학원 수강생이 15% 정도는 줄어든 것 같다”며 “불안한 수험생들 사이에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 얘기를 꺼내는 건 금기”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대학가에서도 확인된다. 서울 모 대학 4학년 이모(26·여)씨는 “매년 11월쯤 되면 도서관 게시판에 국정원 준비 스터디 모집 쪽지가 여럿 붙었는데 댓글 사태 이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며 “대학가에서 시국선언을 하고 비판 대자보가 붙는 마당에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부터 연세대에서 ‘국정원 스터디’를 운영 중인 최모(27)씨도 “지난해보다 스터디 지원자가 20%쯤 줄었다”고 했다. 국정원 시험을 준비하다 포기했다는 김모(28)씨는 “괜히 어렵게 합격해놓고 손가락질 받을 수 있다고 집에서 걱정해 방향을 바꿨다”고 털어놨다.

취업사이트에서도 ‘찬밥’ 신세다. 지난 6월 한 취업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국정원 7급 채용 공고에는 38개 댓글이 달렸다. 그중 15개는 ‘요즘 국정원이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분들 맞나요?’ 등의 부정적 내용이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점수 나오나요?’ 같은 댓글이 많았던 지난해와 180도 달라졌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