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10. 기독교와 미래 : 21세기의 도전 ] ④ 보편성과 다원성&평신도 신학
입력 2013-11-21 16:59 수정 2013-11-21 17:14
우리 시대를 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 오늘은 이 시대를 보편성과 다원성의 차원에서 보려 한다. 보편성과 다원성은 얼핏 서로 상반되는 개념처럼 들리지만 모두 기독교의 진리 체계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들이 기독교에 어떻게 위기가 되는지, 또 그 대안은 무엇인지 보자.
보편성과 다원성의 위기
1)보편성: 20세기 중후반까지 세계의 여러 사회를 지배한 ‘이념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념에 의한 성취나 이상사회에 대한 꿈은 대중적 호소력을 상실했다. 21세기는 인종, 종교, 국가를 넘어서 몇 가지 공통적 가치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이 흐름을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과학적 사고와 그 결과물에 대한 공유, 경제적 가치의 우선성, 기술주의와 효율성, 그리고 정보의 산업화 등이다. 이 네 가지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 가치’로 인정되고 있다. 이런 보편적 가치의 추구는 철저히 세속사회의 자체적인 체계와 메커니즘에 의해 진행되기 때문에 역사를 초월하는 ‘신(神)’과 같은 존재는 점차 수용되기 어려워진다.
기독교는 계시 종교다. ‘계시’는 역사적이지만 동시에 역사를 초월하는 성격도 가진다. 기독교 진리는 역사 내의 기준에 의해 판단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는 초월적 성격을 가진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의 ‘계시’ 개념 자체가 이 시대와 맞지 않는 시대가 됐다.
따라서 ‘하나님’이라는 초월적 실체를 전제로 하는 기독교는 이 시대의 보편적 가치 추구와는 더욱 대화성을 상실할 것이다.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신을 주장하는 기독교는 설 자리가 없어지고, 세속 문화는 자체 완결적으로 굴러갈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21세기는 자연종교나 범신론적 성격을 가진 종교에 비해 기독교가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2)다원성: 1960∼70년대 이후 학문세계와 문화 전반에 걸쳐 새로운 기류가 형성됐다. 이는 서로 유사하면서도 영향을 주는 몇 가지 흐름, 즉 포스트모더니즘, 후기구조주의, 그리고 해체주의 등으로 말할 수 있다. 이들은 서로 유사한 면을 가지면서 대중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대중적으로는 획일적 가치, 하나의 세계관, 조화로운 사고, 통일된 진리 개념을 ‘거부’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문학, 미술, 음악, 조각,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이런 흐름이 확산돼 다원주의적 문화를 형성했다. 21세기는 ‘진리는 하나가 아니라 다원주의적이다’는 믿음을 받아들이는 시대가 될 것이다.
1970∼80년대에 기독교는 종교다원주의로 인한 심각한 논쟁에 빠졌었다. 지금은 그 충격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기독교와 직접적인 논쟁을 벌인 종교다원주의는 문화의 영역에서 일어난 다원화 현상의 한 부분일 뿐이다. 21세기에 기독교는 종교다원주의와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뿌리인 다원주의적 문화 자체와 다투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기독교의 진리 개념의 특징 때문에 매우 심각하다. 기독교 진리는 그 특징상 ‘절대성’을 추구한다. 기독교 진리는 많은 진리 중에 하나가 아니다. 기독교는 성경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오직 예수’를 주장한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원주의 문화와 가치가 확산될 21세기는 기독교에 매우 힘든 시대가 될 것이다.
평신도 신학의 출현
보편성과 다원성이 주는 이 시대의 위기는 신학자와 목회자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이는 위기가 ‘문화적 형태’를 띠면서 범지구적 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평신도의 신학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기독교 세계는 다양한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대안이 될 만한 사례는 많지 않다. 유럽의 기독교는 정체성이 흐려지면서 일부 신학 전문가에 의해 유지되는 형국이다. 미국 교회는 아직 대중성을 잃지는 않았지만 개교회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남미의 해방신학은 교인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에 실패했다. 결국 이런 시도들은 평신도 신학을 활성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계에 머물렀다.
보편성과 다원성에 의해 야기된 위기는 평신도가 주체가 될 때 극복이 가능하다. 다양한 전문 지식을 갖고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활동하는 평신도가 주체가 되는 평신도 신학의 출현이 절실히 요청된다.
한국교회는 평신도 신학이 출현하기에 좋은 상황은 아니다. 한국교회는 평신도를 너무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만들었다. 목회자의 카리스마를 강조하는 풍토에서 목회자의 위치가 권위주의로 발전했고, 평신도의 역할은 위축됐다.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 인식의 변화가 시급하다. 목회자는 권위를 버리고 평신도 동역자를 적극 양성하고 협력해야 한다. 목회자와 신학자는 교회에 탄탄한 신학적 토대를 제공하는 것에 전념해야 한다. 평신도는 기본적인 신학을 공부한 뒤 주체적으로 각 영역에서 신앙적 의미를 찾는 작업을 해야 한다.
앞으로 기독교의 미래는 창의적이고, 열정적이며, 전문성을 가진 평신도 신학자의 참여 여부에 달려 있다. 삶의 영역에서 신앙의 의미를 찾고, 다양한 학문과 교류하는 일을 평신도가 얼마나 해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필자는 평신도를 위한 신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평신도가 주체가 되는 평신도 신학자들의 출현이 절실한 시대다.
평신도에 의해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신앙의 의미를 찾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기독교는 활력을 잃을 것이다. 만약 이 과제가 실패하면 교회는 일부 목회자에 의해 유지되고, 다수의 평신도는 교회를 떠나게 되는 상황이 올 것이다. 21세기의 위기는 목회자와 평신도의 동역으로만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 한국교회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100만 평신도 신학자를 양성해야 한다. 서둘러야 할 것이다.
김동건 교수<영남신대 조직신학, 저자연락은 페이스북 facebook.com/dkkim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