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작고 여린 존재들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모습
입력 2013-11-21 17:18
아가 입은 앵두/시 서정숙·그림 채상우/보물창고
“누가/ 유리창에/ 빨강 칠했나.// 아!// 건넛산/ 단풍이/ 놀러 왔구나.// 누가/ 유리창에/ 빨강 칠했나.// 아!// 건넛산/ 노을이/ 묻혀 놨구나.”(‘해 질 때쯤’)
이맘때였을까? 아니 보름쯤 전, 곱게 물든 단풍이 힘없이 떨어져 낙엽이 되기 전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붉게 물든 단풍이 창가에 어른거리는 모습, 저녁마다 건넛산에 노을빛이 물드는 고운 풍경을 저자는 이렇게 노래했다.
“봄비가/ 찾아낸/ 씨앗// 금세/ 들켰다.// 들킨 김에/ 쏘옥-쏙// 뛰쳐나온/ 아기/배추 잎.”(‘배추밭’)
봄비가 내린 다음 배추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 이 시를 소리 내 읽어보자. 어른들도 빙그레 기분이 좋아질 만하다.
“꽃잎은 좋겠다./ 세수 안 해도./ 방울방울 이슬이/ 닦아 주니까.// 나무는 좋겠다./ 목욕 안 해도./ 주룩주룩 소낙비/ 씻어 주니까.”(‘좋겠다’)
이 시는 초등학교 1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시다. 아이들은 아마도 이 시를 읽을 때 아침마다 세수하기 싫고, 저녁마다 목욕하기 싫은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움찔하지 않을까?
이 책에는 이 3편을 비롯해 17편의 동시가 실려 있다. 살금살금 창문으로 놀러 온 햇살, 집을 짓기 위해 찾아온 제비 부부의 속삭임, 달님과 해님의 격려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아기 새의 숨소리…. 작고 여린 존재들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고 있다.
동시마다 내용이 손에 잡힐 듯한 그림이 곁들여져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크레용과 수채 물감으로 그린 그림은 아이들의 그림처럼 정겹다.
시인이자 비평가인 신형건은 동시들이 리듬감이 넘쳐서 흥겹게 노래 부르듯 읽다 보면, 마음속에 아름다운 그림이 저절로 그려진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 소리 내서 읽어 보자. 그리고 엄마와 아이가 서로의 마음속에 그려진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저자는 1997년 여행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책은 출간된 지 25년 만에 새로운 그림을 곁들여 재출간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