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파국이냐 평화냐”… 쿠바 핵미사일 위기 대처한 13일
입력 2013-11-21 17:18 수정 2013-11-21 22:08
존 F. 케네디의 13일/셀던 M. 스턴/ 모던타임스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1963년 11월 22일 미국 텍사스주에서 카퍼레이드 도중 저격당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50년이다. 미국 전역에선 46세라는 젊은 나이에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그에 대한 추모 열기가 뜨겁다. 동시에 그의 업적을 냉정하게 재평가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쿠바 미사일 위기도 예외가 아니다.
1962년 8월부터 미국에선 소련이 쿠바에 공격용 핵미사일 기지를 짓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결정적 증거를 찾으려는 각고의 노력 끝에 그해 10월 14일 U-2 첩보 정찰기는 쿠바에 준중거리탄도미사일 기지가 있다는 명백한 증거를 입수했다. 그리고 이틀 뒤,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집행위원회(Executive Committee of the National Security Council·이하 엑스콤) 비밀회의를 소집한다. 이때부터 13일간 파국이냐, 평화냐 인류의 운명을 가를 수 있는 긴박한 논의가 이곳에서 펼쳐진다. 그토록 짧은 시간에 소수의 사람들 손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있던 적은 없었다.
이 사건은 놀랍게도 당시 회의를 녹음시켰던 케네디 대통령의 결정으로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엑스콤 회의가 처음 열린 날부터 쿠바 봉쇄를 철회한 11월 20일까지 회의 내용을 담은 43시간의 테이프가 1983년부터 2001년까지 단계적으로 공개된 것이다.
원서 ‘지구가 멈췄던 나날들(The Week the World stood still)’을 번역한 이 책은 23년간 케네디 도서관의 역사학자였던 저자가 테이프의 비밀 해제 작업에 참여하며 확인한 내용을 근거로 써내려간 기록이다. 2003년 500여 쪽의 분량으로 출간한 ‘결정적 실패 피하기(Averting ‘The Final Failure’)’의 핵심을 추려 2005년 일반인들도 읽기 쉽게 발간했다.
회의 초반, 쿠바를 직접 공습하는 것이 해상 봉쇄보다 유리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도 케네디 대통령은 쉽사리 공습 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10월 19일 커티스 르메이 공군 참모총장이 “봉쇄와 정치적인 조치가 오히려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당대 겁쟁이에 빗대는 발언을 퍼붓는 순간에도 케네디 대통령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어 모든 군 사령관과 참석자들이 한 목소리로 쿠바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요구했지만 그는 “봉쇄의 이점은 핵전쟁으로 확전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10월 22일 그는 소련의 쿠바 미사일 배치 사실을 공개하고 해상 봉쇄를 천명한다. 또 다시 국제사회 전체가 긴박하게 움직인 닷새가 흐른 뒤 소련의 흐루쇼프 서기장은 유엔의 감시 하에 쿠바 미사일을 철수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핵무기가 동반된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인류가 막 벗어나는 순간이다.
저자는 녹음 기록에 실린 생생한 대화를 이야기 형태로 풀어썼다. 핵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는 케네디 대통령의 고뇌와 조바심, 정치적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려는 군 장성들을 향한 비판적 시각, 자기 신념을 설득해 나가는 과정에서 보여준 명석함 등 모든 면모를 볼 수 있다.
회고록 ‘13일’에서 대통령인 형과 자신이 사태를 해결한 것처럼 기록했던 로버트 케네디 법무부 장관조차 “봉쇄로 해결되겠느냐”며 매파와 다를 바 없는 주장을 했다는 반전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21세기 군사 강대국 사이에서 벌어진 전면적인 핵 대결을 다룬 유일한 ‘사례연구’로 남을지도 모른다. 인류 마지막 핵 대결의 가능성이 남아있는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이 책이 그래서 남다르다. 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등 남북 간에 군사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대통령과 군 수뇌부의 대응 행태에 쏟아졌던 국민의 불안한 시선을 생각해보면 더 그렇다. 케네디 대통령이라는 인물 개인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최고 지도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시사점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이 책이 번역 출간된 사연도 흥미롭다. 공군사관학교 출신으로 2011년 소령으로 전역한 뒤 로버트 케네디의 회고록 ‘13일’을 번역한 박수민은 “그의 기억이 정말 정확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다시 이 책을 번역했고 아예 1인 출판사를 차려 책을 출간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해외 역작을 소개하는 ‘쿠바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내년 초 마이클 톱스의 역작 ‘12시 1분전’ 출간을 계획 중이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