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책] 사진을 이야기하면서 사진은 한 장도 없어
입력 2013-11-21 17:19
찍지 못한 순간에 관하여/윌 스티어시 엮음(현실문화·1만4500원)
“전 세계 인민들이 우리 공화국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에 대한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에 대해서 잘못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요. 진실된 사진을 찍어서 바깥사람들에게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일본 사진작가 히로시 와타나베는 평양의 한 호텔 접견실에서 북한 고위관료의 훈시와 함께 김일성 배지를 선물 받았다. 그리고 그는 방금 일어난 상황을 촬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강렬한 사진이었을 텐데 왜 사진을 찍지 않았지? 내가 너무 겁에 질려 있었던 걸까?
젊고 야심만만한 신진 사진작가에서 토드 히도나, 에멧 고윈 같은 거장 62명이 자신이 찍고 싶었지만 찍지 못했던 사진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뛰어난 감각과 기교, 그리고 훌륭한 도구를 갖춘 전문가들이 놓친 사진은 어떤 것들일까? 그리고 거기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사진을 이야기하는 책이지만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사진을 찍지 못했던 일에 관한 책이니 사진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사진 없는 사진첩’의 이미지를 채우는 것은 작가의 내밀한 경험이다. 자유로운 형식과 시선으로 쓴 개성 있는 글들은 결국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을 담은 포토 콜라주가 된다. 최민정 옮김.
박강섭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