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효치 시집 ‘별박이자나방’… 뭇 벌레·식물들 이름 불러보면 출렁이는 생명 율동
입력 2013-11-21 17:13 수정 2013-11-21 18:48
“시인은 세상을 꺼꾸로 보기도 한다지만/ 시인도 아닌 이들이 내 이름에 ‘꺼꾸로 여덟팔’을 붙였을까// 날개 가운데 새겨진 흰 띠무늬는/ 꽁무니 쪽에서 보면 거꾸로 여덟팔자지만/ 얼굴 쪽에서 보면 옳은 여덟팔자요/ 그것도 석봉이나 추사의 글씨보다 더 아름다운데// 왜?/ 얼굴을 대면하기 껄끄러운가?/ 하기사 인간들이란 부끄러운 일도 많아 그렇긴 하지만”(‘꺼꾸로여덟팔나비’ 전문)
문효치(70) 시인의 신작 시집 ‘별박이자나방’(서정시학)은 이 지상에서 미물이라고 불리는 뭇 벌레들과 식물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쓴 생명의 율동이 출렁거린다.
그가 호명한 벌레들은 ‘털두꺼비하늘소’ ‘미운사슴벌레’ ‘개똥벌레’ ‘왕귀뚜라미’ ‘산푸른부전나비’ ‘큰멋쟁이나비’ ‘노란줄점하늘소’ 등 수십 여 종에 달한다. 곤충도감에서나 볼 수 있는 벌레의 왕국이 따로 없다. 가만히 살펴보면 벌레 이름은 여러 이미지들을 조합한 복합적인 단어임을 알 수 있다. 털과 두꺼비와 하늘소의 조합인 ‘털두꺼비하늘소’라든지 노란 줄과 점과 하늘소의 조합인 ‘노란줄점하늘소’에서 알 수 있듯 이름 자체가 상상력의 보고가 되고 있다.
“등에/ 외계로 가는 길이 보인다/ 피타고라스가 걷던 길에/ 에너지가 모여들어/ 거대한 별들의 숲이 자라고/ 우리의 삶이 하늘로 이어진다/ 이 길에서 권력이 나온다/ 하늘의 입구에 백로자리가 날개를 펄럭인다/ 우주의 축이 수직으로 일어선다”(‘별박이자나방’ 전문)
시인은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식물들의 이름도 호명한다. ‘좁쌀냉이꽃’ ‘층층이꽃’ ‘멍석딸기꽃’ ‘노랑어리연꽃’ ‘각시붓꽃’ 등은 생명이 있는 곳에 말이 있고, 이름이 있고, 존재가 있는 것을 새롭게 인식시킨다. 평소에는 우리가 그냥 지나쳐 버리기 십상인 여리고 미약한 벌레와 식물들은 역설적으로 우리 곁에 소우주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소우주를 섬기는 시인의 마음이 가을 풀벌레소리처럼 찌릿, 하고 진동음을 내고 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