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근대 사상가 바우만의 통찰과 사유
입력 2013-11-21 17:12
이것은 일기가 아니다/지그문트 바우만/자음과모음
우리 시대가 가장 주목하는 ‘탈근대’ 사상가 지그문트 바우만은 올해로 88세이다. 그의 인생은 이제 황혼녘에 도달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호기심은 여전히 왕성하다. 그는 매일매일 뉴욕타임스 1면 기사나 사설을 통해 세계의 사건이나 현상을 진단하고 논평하기를 즐기는 데 그 논평을 일기 형식으로 적어나간다. 일기라고 해서 시시콜콜 오늘의 일에 대해 기록한 건 아니다. 논평할만한 사건이나 현상이 매일 터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저작에 담은 그의 통찰은 너무 섬세하고 깊어서 일기의 범주를 벗어나곤 한다. 그래서 이 글은 일기 형식이지만 ‘이것은 일기가 아니다’. 더구나 바우만의 일기엔 제목이 있다. 예컨대 유럽에서 고학력 실업자로 전락하고 있는 대학생 시위가 연일 끊이지 않았던 2010년 12월 17일 일기의 제목은 ‘왜 학생들이 마음 놓고 쉬지 못하는 데 대해’이다. “우리는 현재 학생들의 불만을 철저히 분석하고 연구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런 거리 시위가 끝나고 그들의 ‘새로운 가치’가 더 이상 TV 시청률을 높이지 못한다면 이는 곧바로 잊힐 것이다. 무엇인가를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잊어버리는 것은 유동적인 현대사회의 지울 수 없는 흔적이다. 이런 고통 때문에 우리는 대중의 분노가 폭발할 때 이런 문제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 진지하게 이해하기보다 각각의 사건을 사무적으로 다룬다.”
그의 일기는 완결성은 없지만 매끈하게 포장돼 나온 그의 다른 책에서 읽을 수 없는 사유의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난다. 더구나 근대성의 문제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던 바우만과는 다른 ‘인간적인 바우만’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매력이다. 그렇지만 사소한 이야기는 단 하나도 없다. 그가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처음 이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한 2010년 9월 3일 일기는 압권이다. “자니나가 떠난 뒤 나는 바닥끝까지 어두운 외로움을 느꼈다. 이렇게 쌓인 감정들은 고통스럽고 날카로우며 지독한 악취가 나는 독과 같다. 컴퓨터를 켜자마자 바탕화면에 있는 자니나의 사진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 워드프로그램을 열어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은 내게 있어 자니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 이런 대화는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든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