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 잘못하면 오히려 독… 필리핀 등 재난지 구호 가이드라인 4가지

입력 2013-11-21 15:05


미국의 크리스천 재난전문가가 태풍 피해를 입은 필리핀을 위한 교계의 구호활동에서 주의해야 할 4가지 지침을 최근 소개했다.

기독교 재난연구기관인 ‘인도적재난기관’(Humanitarian Disaster Institute) 설립자이자 공동이사인 재미 아텐 박사는 미국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기고에서 “요즘 많은 교회 지도자와 교인들이 필리핀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에 대해 자문을 구한다”며 “잘못된 구호활동은 재난지역에 오히려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구호 실패 사례를 근거로 들면서 필리핀에서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텐 박사는 생존자들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구호지침으로 꼽았다. 1989년 사상 최악으로 기록된 알래스카해협의 엑손 발데즈호 기름유출사고 때 피해지역은 반팔티와 반바지, 수영복 등 쓸모없는 기부 옷가지 때문에 오히려 20만 달러의 수거 비용을 떠안아야 했다. 작년 말 발생한 코네티컷주 뉴타운의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때도 장난감과 곰인형 등의 기부가 넘쳐나 이곳 주민들은 ‘더 이상 기부품을 보내지 말라’고 공식 발표해야 할 정도였다. 그는 “기부를 하기 전에 정확한 정보를 수집해 피해 지역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해야 한다”면서 “현물보다는 돈을 기부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봉사자들은 피해지역에 왜 도움을 주려는고 하는지에 대한 원론적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허리케인 중 하나였던 카트리나가 2005년 8월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를 강타했을 때 한 교회가 현장구호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6만 달러어치의 냉동식품을 트럭에 싣고 직접 피해지역으로 갔지만 전기가 끊겨 음식은 모두 쓰레기가 됐다. 그는 “긴박하게 돌아가는 재난 현장을 직접 보길 원하는 건 아닌지, 주위에 좋은 이미지를 주고 싶은 의도로 구호에 참여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자발적 불청객 봉사자가 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세 번째 지침이다. 재난 현장에 투입되는 교회와 교인은 독자적으로 구호활동을 펼칠 수 있어야 하고 모든 환경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텐 박사는 “비행기를 타고 낙하산을 이용해 한시라도 빨리 현장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일본과 아이티 같은 많은 재난 현장들이 성급한 봉사자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며 재난 초기에 몰렸다 금세 사라지는 냄비근성을 버리고 장기적인 구호 전략을 세우라고 충고했다.

아텐 박사는 마지막으로 필리핀복음주의협의회, 필리핀구호개발서비스와 같은 지역교회 연합이나 미가네트워크, 월드비전, 사마리아인의 지갑 등 국제 구호단체와 협력하거나 이들을 후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권고했다. 그는 “이들 단체는 오랜 경험과 공신력을 바탕으로 지역교회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은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