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잃고 시간의 소중함 깨달아”… 조인찬 시각장애 골퍼·시각장애 문화관광해설사 1호
입력 2013-11-20 18:45
“시력을 잃고 골프를 다시 시작하면서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공을 맞히는 순간은 0.001초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맞히느냐에 따라 결과가 엄청나게 차이납니다.”
시각장애 골퍼이자 시각장애 문화관광해설사 1호인 조인찬(60·시각장애1급)씨는 20일 골프공과 시간의 상관관계를 얘기하면서 실천적 봉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씨는 2007년 코소보 여행 때 ‘사람과의 관계나 봉사도 순간을 놓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깨달음의 순간을 회고했다.
그는 당시 거리에서 팔 다리가 불구인 현지 주민들의 도움 요청의 손길을 머뭇거리며 그냥 지나쳤었다. 그러나 마음에 걸려 한참 뒤 도움을 주려고 다시 그 곳에 갔을 때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때 구제의 손길도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조씨는 가업을 이어받아 고압가스 제조 회사를 운영하던 사업가였다. 그에게 불행은 갑작스레 찾아 왔다. 1988년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 도중 무지개가 마구 휘어져 보였다. 안구 황반변성 때문이었다. 그해 오른쪽 눈 시력을, 2000년 왼쪽 눈 시력을 차례로 잃었다.
“한쪽을 실명했을 땐 삶의 100%를 잃는 것 같아 한동안 방황했습니다. 하지만 신앙을 회복하고 가족의 도움으로 마음의 눈을 찾았습니다.” 조씨는 그 후 왼쪽 시력까지 잃었을 땐 일상생활이 약간 불편해지는 삶의 5% 정도를 잃었다고 담담하게 생각했다.
조씨는 지난 10월 미국 조지아주 콜럼버스에서 열린 시각장애인 골프 경기인 블라인드 월드매치플레이 대회에 선수로 참가했다. 그는 빛을 전혀 감지할 수 없는 B1(전맹·全盲)과 약시인 B3의 중간 등급인 B2 경기에 세계연합팀으로 출전해 미국팀을 꺾고 우승했다. 그의 공식 대회 최고 기록은 82타로 일반 골퍼들도 치기 힘든 스코어다.
서울 연동교회에 출석하는 조씨는 시력을 잃고서 세상이 오히려 더 밝아졌다고 말한다. 자신이 밝아지면 세상도 밝아진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이순(耳順)인 조씨는 ‘안순(眼順)’이 되길 희망하고 있다. 눈이 순해지면 마음도 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황반변성환우회 회장이기도 한 조씨는 회원들의 복지를 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는다. 서울 방배동 화인골프스쿨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골프 레슨 봉사를 하는 등 봉사활동도 열심히 한다. 서울 종로구청에서 양성한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며 시각장애인들에게 고궁의 역사를 설명한다.
조씨는 “장애인들도 감사할 줄 알고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면서 “비장애인들도 장애인을 온전한 인격체로 대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글·사진=오병선 선임기자 seon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