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투자 부진이야” 세계경제 ‘장기정체’ 잇단 경보음

입력 2013-11-20 18:23 수정 2013-11-20 22:17


전 세계에 저성장에 대한 경보음이 잇따르면서 ‘장기정체(secular stagnation)’ 이론이 뜨겁게 부각되고 있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최근 언급한 이 이론은 미국이 제로금리를 유지해도 쉽게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 단면을 묘사했으며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속적인 저금리 및 양적완화 정책을 추진하도록 하는 모티브가 되고 있다.

장기정체론은 미국만이 아닌 선진국 및 한국경제에도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 없지 않기 때문에 계속된 경기 침체에 대한 글로벌 경제권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장기정체란 미국의 경제학자 한센이 제시한 학설로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고 경제가 성숙 단계에 달해 있는 나라는 투자를 유치하는 각 요인이 줄어들면서 경제가 정체해 실업이 발생하게 된다는 게 골자다.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 중인 서머스 전 장관은 지난 8일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학술대회에서 “미국 등 선진국 경제가 금융위기 이전의 ‘정상 상태’로 복귀하기 어렵고 만성적으로 수요 부족과 성장 부진에 시달리는 ‘장기정체’가 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19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주최 포럼에서도 같은 주장을 하며 정책 입안자들의 적극적인 경기부양을 촉구했다.

WSJ에 따르면 미국 경기 회복이 최고 속도로 진행됐지만 미국경제 규모는 위기 이전의 성장 추세에 비해 약 7%, 연간 약 1조 달러(약 157조원)가 줄어든 상태다.

서머스의 장기정체론은 미국 안팎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날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미국이 이미 ‘미국판 잃어버린 10년’의 중간 반환점을 훨씬 지나쳐 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서머스 전 장관이 강조했듯 통화정책이 너무 느슨하다는 주장에는 큰 문제가 있다”며 “어디에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경기 과열 조짐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마틴 울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경제논설위원도 20일자 칼럼에서 “장기정체는 투자 결핍에 따른 과잉저축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경제 회복세가 심각하게 허약하며 선진국이 장기적 수요·공급 약세라는 금융위기보다 더 큰 도전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도 이날 워싱턴DC에서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미국경제가 우리가 원하는 지점보다는 훨씬 떨어져 있다”며 양적완화에 대한 지속 대책을 시사했다.

한국은행 김중수 총재도 유사한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20일 경제동향 간담회에서 “환율, 물가, 투자가 글로벌 이슈 같지만 모두 국내적인 이슈이기도 하다”며 국내 저환율·저물가 현상과 불확실성에 따른 투자 부진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그렇다면 장기정체에 대한 해법은 무엇일까.

서머스 전 장관과 울프 논설위원은 과잉저축을 사회기반시설과 같은 공공부문 투자에 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머징 시장에 대한 투자 활성화도 촉구했다. 물가상승률을 높이고 실질금리를 더 떨어뜨려 저축을 투자·소비로 유도하는 것도 대안으로 소개됐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