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건강 모두 가진 아시아 신흥 부유층 자녀부양 받기보다 ‘독립’ 원한다

입력 2013-11-20 17:52 수정 2013-11-20 22:13

전직 인도정부 관료 P S 라마찬드란(85)은 80세가 되던 해 아들에게 부양받는 대신 은퇴자가 모여 사는 ‘실버타운’에 들어갔다. 대개 노인이 되면 자녀 집에 들어가 사는 인도에서 드문 결정이었다. 라마찬드란은 19일(현지시간) “우리 부부는 독립을 원했다. 이곳(실버타운)에는 일거리를 비롯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게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인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중국 등 빠르게 성장하는 아시아 국가에서는 라마찬드란처럼 노년에 전통적 가족 단위를 벗어나는 신흥 부유층이 늘고 있다. 돈과 건강을 가진 이들은 더 이상 자녀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립적으로 살아간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부모 부양 부담이 줄면서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나가는 자녀는 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이 최근 실시한 인터넷 설문에서 자녀가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응답은 48%로 절반이 안 됐다.

싱가포르 시장분석업체 에이징 아시아의 재니스 치아 대표는 “아시아에서 효(孝)는 여전히 큰 가치이지만 그 역할은 예전보다 적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 조부모는 집에 머물면서 어쩌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공원을 걷고 또 손자들을 돌보는 데 만족했다”며 “반면 우리 부모는 여행을 하면서 활발하게 살길 원하고 자식들과 꼭 함께 살아야 한다곤 생각지 않는다”고 예를 들었다.

자녀와 떨어져 사는 노인이 늘면서 이들을 겨냥한 시장은 급속히 커지고 있다. 성인용 기저귀 제조업체부터 휴일 활동을 계획해주는 회사까지 다양한 기업이 아시아로 몰려든다. 에이징 아시아는 은퇴시장 규모가 2017년 2조 달러(약 2115조원)에 달할 것으로 본다. 지난해 인도 국가경제 규모(약 1조8000억 달러)보다 크다.

노인에게 필요한 시설과 서비스를 갖춘 실버타운은 은퇴시장의 집합체다. 말레이시아 조흐루주(州) 경제특구에 조성된 실버타운은 따뜻한 물로 채워진 실내 수영장과 조깅 트랙, 인근 골프장을 홍보하고 있다. 인도 북부 데라둔의 한 실버타운은 사원과 온천, 허브 정원에 둘러싸인 삶을 약속한다. 라마찬드란 부부가 사는 곳에선 가정부도 쓸 수 있다. 의사가 매일 방문하고 간호사는 늘 대기 중이다.

독립을 선택하는 노인이 늘어나는 건 이런 시설이 발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인의 마을인 실버타운에서는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외롭지 않게 살 수 있다. 아늑하고 안전하기까지 하다. 물론 돈이 있어야 누릴 수 있다. 데라둔의 실버타운에 입주하는 비용은 20만 달러가 넘는다.

노인을 위한 시장은 고령화와 맞물려 더욱 커질 전망이다. 부자 노인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크레디트 스위스는 2018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백만장자가 지금보다 75% 늘어난 115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에서만 88% 늘어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