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안개와 물안개로 빚은 ‘千의 얼굴’… ‘밖에서 본 영암 월출산’의 진풍경

입력 2013-11-20 17:20 수정 2013-11-20 23:03


전남 영암의 월출산은 ‘천(千)의 얼굴’을 자랑하는 명산이다.

광주 무등산에서 출발한 부드러운 연봉들이 끊어질듯 이어지다 바다에 가로막히자 용틀임하며 영암 들판에 마지막 비경으로 만든 작품이 월출산이다. 정상인 천황봉을 비롯해 구정봉 향로봉 장군봉 사자봉 등이 마치 금강산의 일부를 떼어 놓은 듯 닮아 ‘남한의 금강산’ 또는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월출산은 안보다 바깥에서 보는 풍경이 훨씬 남도스럽다.

월출산은 여느 산과 달리 영암 들판서 홀로 우뚝 솟아 있다. 나주나 목포에서 영암 방향으로 달리다보면 느닷없이 기암괴석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월출산이 걸개그림처럼 시야를 막아선다. 남도의 너른 들판과 구릉을 닮은 야산에 익숙해진 눈에는 해발 809m 높이의 월출산이 주는 무게감이 만주 들판에서 백두산을 만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천의 얼굴’ 월출산은 보는 위치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지만 계절과 시간, 그리고 일기에 따라서도 시시각각 전혀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특히 영암의 정자, 저수지, 들판, 길과 어우러진 월출산의 사계는 정겨우면서도 외경스럽다. 영암 토박이로 36년 동안 월출산의 사계를 카메라에 담아온 사진작가 전판성(55)씨가 ‘밖에서 본 월출산’에 매료된 것도 이 때문이다.

전 작가가 추천한 ‘밖에서 본 월출산’의 최고 포인트는 금정면 연소리에 위치한 활성산(498m) 정상. 산악자전거(MTB) 코스로도 유명한 활성산은 영암서광목장이 위치한 곳으로 최근 영암풍력발전단지 공사가 한창이다. 전 작가는 월출산과 가까운 이곳에서 새벽의 월출산 풍경을 관조하면 그 신비로움에 빠져든다고 말한다.

해뜨기 직전 활성산 정상에서 조우하는 월출산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풍경을 담고 있다. 아침밥 짓는 연기처럼 가느다란 새벽안개는 띠처럼 월출산 허리를 감싸 안은 채 영암 들판을 향한다. 월출산 자락에 둥지를 튼 마을은 새벽잠에 취해있고 겹겹이 포개진 능선은 골골마다 새벽안개를 보듬은 채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간다. 활성산 정상은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월출산을 담기에도 좋은 포인트.

월출산 뒤편에서 태양이 솟을 무렵 정약용 남도유배길과 인접한 영암읍 개신리의 사자저수지에서는 색다른 월출산 풍경이 그려진다. 사자봉을 비롯한 월출산의 바위봉우리들이 황금색으로 물들고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수면에는 월출산의 반영이 선명하다. 시나브로 색이 바래가는 월출산 단풍도 수면에서는 아연 생기가 넘친다.

영암에는 유난히 저수지가 많다. 월출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둑을 막고, 간척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곳곳에 저수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암에서 가장 큰 저수지는 서호면 엄길리의 학파제1저수지. 인근 군서면 모정리의 모정저수지와 함께 학파제1저수지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이른 아침에 드넓은 수면에 비친 월출산의 반영이 몽환적이다.

일찍이 고산 윤선도는 “월출산 높더니만 미운 것이 안개로다. 천황 제일봉을 일시에 가리는구나”라며 선경을 가리는 안개를 탓했다.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사진작가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의 앵글은 산안개와 물안개에 가려진 월출산 바깥에서 월출산의 진정한 멋을 담고 있다.

영암=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