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대 단풍터널로 시간여행 떠나요”…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장관

입력 2013-11-20 17:09


죽향골로 유명한 전남 담양의 늦가을 풍경은 두 가지였다. 한국의 대표적 정원 소쇄원과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정자 식영정(息影亭)은 이미 단풍잎과 은행잎이 떨어져 쓸쓸한 갈색의 세상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멀지 않은데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아직 찬연한 주홍으로 빛나고 있었다. 중부지방에선 첫 눈 소식이 들렸지만 남도의 가을은 그렇게 끈질긴 생명력으로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국내 최고의 가로수길로 통하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계절마다 독특한 매력을 뽐낸다. 연둣빛 새싹이 움트는 봄날에는 생명의 환희를 노래하고 짙푸른 나무터널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는 여름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심신을 청량하게 한다. 그리고 하얀 눈이 내린 겨울날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에 새겨진 발자국은 사색의 깊이를 더한다.

하지만 가을만큼 시적이고 낭만적인 계절도 없다. 붉은 옷을 입은 영국 버킹엄궁의 키다리 근위병처럼 주홍색으로 물든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도열한 풍경은 근엄하기까지 하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가로수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과 긴 그림자는 한 폭의 수채화이자 한 편의 서정시이다. 연인이나 가족끼리 남도의 가을이 익어가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산책하면 너나없이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느낌이다.

담양의 랜드마크로 부상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는 담양읍 학동에서 금성면 원율리까지 24번 국도변 8.5㎞ 구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전국적으로 가로수 조성 사업이 한창이던 1972년에 담양읍을 중심으로 12개 읍면으로 연결되는 국도와 지방도 등에 식재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40년 세월이 흐르면서 30m 높이로 자라 나무터널을 이룬 것이다.

일설에는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배달사고’로 탄생했다고도 한다.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할 메타세쿼이아 묘목 1500여 그루가 담양으로 잘못 실려 왔다는 것이다. 메타세쿼이아는 당시 흔한 수종이 아닌데다 값비싼 나무라 담양군에서는 되돌려 보내지 않고 얼른 심어버렸다고 한다.

이등변삼각형 형태의 메타세쿼이아는 미국에서 자생하는 세쿼이아 ‘이후(meta)’에 등장한 나무라는 뜻. 신생대 북반구에 널리 분포했던 메타세쿼이아는 은행나무와 함께 대표적인 화석식물이다. 지구상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메타세쿼이아는 1941년 중국 양쯔강 상류에서 발견돼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아득한 옛날에 공룡과 함께 살던 거대한 나무가 우여곡절 끝에 대나무의 고장 담양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이국적인 모습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2001년 영화 ‘와니와 준하’를 통해 일반에 첫선을 보이면서 인기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드라마 ‘여름향기’를 비롯해 온갖 영화와 CF가 경쟁적으로 담양에서 순창으로 가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배경으로 삼았다. 2002년 산림청으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2006년에는 건설교통부에 의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로 선정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영화 ‘화려한 휴가’의 첫 장면을 장식한 후에는 관광객도 두 배로 늘었다. 우연한 배달사고가 시쳇말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이 아름다운 가로수길의 일부가 사라질 뻔한 적도 있었다. 2000년에 24번국도 확장공사로 600여 그루의 나무가 베어질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이 나서 도로 노선을 변경시켰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가장 아름다운 구간은 담양읍내의 학동교에서 금월교까지 2.1㎞ 구간. 2011년에는 이 구간의 아스팔트 포장을 걷어내고 생태흙길을 조성해 한국을 대표하는 산책로로 거듭났다.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는 지난 주말부터 본격적으로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그늘진 곳은 아직 초록빛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은 주홍색이다. 햇빛의 양과 방향에 따라 미묘한 색의 변화를 보이는 것이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는 잎이 떨어지는 이번 주말부터 앙상한 나목과 주홍으로 덮인 생태흙길이 더욱 환상적인 남도의 만추를 연출할 전망이다.

담양=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