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배트맨 꿈을 이룬 소년
입력 2013-11-20 17:30
백혈병에 걸린 5살짜리 어린이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온 미국 국민들이 나섰다. 감동적인 사연의 주인공은 캘리포니아주 북부에 거주하는 마일리 스콧군. 스콧은 생후 18개월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지난 6월까지 항암 치료를 계속해 왔다. 그의 꿈은 여느 미국 어린이처럼 악당을 무찌르는 배트맨이 돼 공포에 빠진 도시를 한번 구해보는 것이었다.
이를 전해들은 봉사단체 ‘메이크 어 위시’는 바로 실행에 돌입했다. 어린이들의 꿈이 이뤄지도록 도움을 주는 이 단체는 샌프란시스코 시민과 시 당국, 지역 경찰서 등의 협조를 얻어 스콧의 꿈을 현실화시켰다. 지난주 말 검정 슈트와 망토로 몸을 감싼 ‘배트키드’가 된 스콧군은 수천 명의 구경꾼과 1만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트맨과 함께 악당 펭귄 등을 물리치고 붙잡힌 소녀를 구출했다.
더욱 흐뭇한 장면은 지역의 유력 일간지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도 스콧군을 위해 1면을 통째로 할애해 준 것. 아예 신문 제목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대신 배트맨이 활약한 도시 이름을 따 ‘고담시티 크로니클’로 바꿔 배트키드의 활약상을 담아 1000여부를 찍어 배포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메시지를 보냈다. 한 소년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모든 국민이 나선 것이다.
배트키드의 효과는 컸다. 많은 미국 시민들은 각종 SNS를 통해 “배트맨 꿈 이룬 소년, 꼭 회복하길 바랄게” “어서 병원에서 나와 망가진 미국을 구해내렴”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일전에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경호를 맡았던 한 대원의 아들이 백혈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에 머리를 삭발하고 활짝 웃는 모습으로 어린이를 무릎에 앉힌 장면이 공개됐다.
사실 미국에서도 요즘 우리나라처럼 어린이 등 젊은층보다 노년층에게 복지예산이 집중되고 있다는 논쟁으로 시끄럽다. 예산 자동 삭감이 시작된 데다 공화당이 어떤 경우에도 세금은 올리지 못하도록 버티고 있어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정부의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나온 스콧군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줬음직하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는 미국의 모습은 부럽다. 마침 19일부터 25일까지는 아동학대 예방주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배트키드 대신에 계모가 8살짜리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하자 생모가 나타나 아이 아빠와 계모를 살인죄로 처벌해 달라는 피켓 시위를 한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린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