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임종 환경을 바꿉시다
입력 2013-11-20 17:30
평균 21일. 우리나라 암 환자들이 말기 진단을 받고 사망하기까지 병원에서 보내는 기간이다. 이른바 임종 기간이 평균 3주라는 말이다.
우리나라 말기 암 환자들에게 이 기간은 실로 고통의 연속이다. 죽어서는 되레 화려하고 쾌적한 영안실을 차지하지만 정작 살았을 적엔 그러기가 쉽지 않은 모순투성이 우리나라 의료문화가 맨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우선 편안한 죽음을 맞기 위해 마음에 꼭 드는 호스피스 시설 또는 병상을 얻기가 말 그대로 죽기보다 더 힘들다. 공기 좋고 경치도 좋은 교외의 독립형 호스피스 시설은 가족 왕래가 힘들어 불편하거나, 사실상 수용소 수준으로 환경이 열악한 곳도 많아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그렇다고 대도시 큰 병원이라고 사정이 만만한 것도 아니다. 사생활이 보장되는 독립형 호스피스 시설은 없고 5∼6인실 위주 병실에 30병상 미만을 할애해 놓은 정도인 데다 그나마 서울성모병원과 서울대병원 등 일부 병원만 운영 중이어서 입원 경쟁이 치열하다. 어렵게 입원 기회를 얻어도 4주간 밖에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입원을 바라는 다른 말기 암 환자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는 까닭이다.
“장삿속 호화판 장례식장을 허물어 완화의료기관을 만들자.” 서울대병원 암통합케어센터 윤영호 교수의 주장이다.(‘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 컬처그라퍼)
장례식장을 없애면 대체 어디 가서 장례를 치르라는 말인가. 윤 교수는 “장례사업이 병원의 큰 수익원이 되면서 갈수록 영안실이 호화로워진다”며 “오랫동안 임종 환자들을 봐온 내 입장에서 보면 이건 주객이 전도된 처사”라고 주장한다.
병원 입장에서야 고인을 쾌적한 환경에서 모시고 유족의 편의를 돕는 것이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인간을 위하는 마음이 그렇게까지 극진하다면 고인이 죽기 전에 쓰던 병실부터 먼저 환경개선을 하는 게 옳다는 지적에 귀가 솔깃해진다.
같은 병실을 쓰던 말기 환자가 시신이 되어 물건 옮겨지듯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웃 병상의 환자와 가족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사생활 보호가 어렵고, 편안하지도 않아 암울한 병실 환경은 그 병실에서 또 다른 죽음을 준비하는 말기 암 환자와 가족들의 삶의 질과 생에 대한 투지를 더욱 떨어트리는 빌미가 될 게 분명하다. 말기 암 환자들이 임종 전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또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곳이 바로 병실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암울하고 비참할 땐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내면도 그것을 닮기 쉬운 것이다.
우리나라 암 사망자들은 대부분 5∼6인 다인 병실에서 임종을 한다. 다인 병실 귀퉁이의 어두운 침상과 정원이 내다보이는 창가의 환한 침상, 당신이라면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느 곳에서 보내고 싶겠는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모든 이의 이런 바람대로 미국, 영국 등 선진 복지국가에서는 콘도처럼 편안하고 쾌적한 독립형 또는 병동형 호스피스 완화의료기관이 보편화돼 있다. 호스피스 전문 의료진이 각 가정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말기 암 환자를 돌봐주는 가정형 호스피스도 활발하다.
나는 지난달 23일 이 난을 통해 입원 환자들의 병원비 부담을 덜어주려면 건강보험 급여 기준 병실을 2인실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건의한 바 있다. 정부가 기준 병실을 2인실로 삼을 경우 말기 암 환자들의 사생활 보호와 평온한 임종 환경 조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건강보험 제도권 안에서 장례식장 못잖은 수익원이 될 수 있게 호스피스 수가(酬價, 서비스 가격)를 현실화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병원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또 가족 주치의 및 방문간호사 제도를 활성화해 말기 암 환자들이 집에서도 편안하게 통증 조절 등 완화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