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하태림 (4) 눈물의 기도·재활 1년… 두 발로 다시 서는 기적이
입력 2013-11-20 17:01 수정 2013-11-20 21:38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 성경을 읽기로 했다. 책을 손으로 넘길 수 없기에 동생에게 성경 구절이 녹음돼 있는 테이프를 사달라고 했다. 동생은 잠언과 전도서, 시편, 신약 전체가 녹음돼 있는 테이프를 사다 줬다. 하루 종일 말씀을 들었다. 어느 날 유난히 귀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야고보서 1장 2절 말씀이었다. 수십 번 반복해서 들었다. 하나님은 내게 고쳐주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셨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저는 기뻐할 수 없습니다. 제 처지에 어떻게 기뻐한단 말입니까.” 하나님을 원망했다. 입장을 바꿔보라며 따져 물었다. 이미 하나님은 예수로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기쁘게 감당하셨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지만 당시는 이해하지 못했다. 울며 며칠을 기도했다. 나에게 주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하나님은 잠언 17장 22절을 답으로 주셨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근심이 질병의 근원이라 하셨다. 하나님은 “내가 너의 기도를 들었으니 근심하지 말고, 기쁘게 견디라”고 하셨다.
깨달음이 든 순간 회개기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작은 거짓말에 대한 회개까지 기도는 끊이지 않았다. “한 번 더 살아갈 기회를 주세요.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살겠습니다. 만약 제가 어긋난 삶을 산다면 지금보다 더한 고통을 주셔도 달게 받겠습니다. 하나님 연약한 제게 힘을 주십시오.”
눈물로 기도를 이어가고 있던 그때 조금씩 기적이 움트기 시작했다. 1989년 1월, 사고 후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왼손을 시작으로 다리에도 조금씩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느낄 수 없었던 통증도 서서히 느껴졌다. 마치 온 몸을 수만 마리 벌레가 물어뜯는 것 같았다. 그래도 통증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살아나고 있다는 신호 같았다. 의사에게 진통제를 맞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혹 통증이 완화됐다가 또다시 느끼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서였다. 밤마다 끙끙 앓는 소리가 너무 커 환자들이 항의하기도 했다.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불같이 일었다. 영양주사를 끊고, 동생에게 물에다 밥을 말아서 입에 넣어 달라고 했다. 한번 목 뒤로 넘기는데 100번을 씹어야 했지만 기어코 한 공기를 먹었다. 기도도 멈추지 않았다.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고 싶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포도나무, 우리를 가지라 하셨다.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고 주님의 제자가 되실 것이라 하셨다. 열매는 곧 전도를 뜻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내가 어떻게 전도를 할까 고민했다. 믿지 않는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주일에 병문안 오면 내 침대를 밀어서 예배당에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다.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내 처지가 딱했던지 그들은 불평 없이 들어줬다. 눈물로 기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기가 막힌 전도 방법이었다.
재활훈련도 꾸준히 했다. 동생에게 수시로 발과 팔을 들었다 놔 달라고 했다. 침대를 세워 허공에서 걸음마 연습도 했다. 걸음마에 점차 힘이 붙기 시작했다. 수개월 재활 끝에 입원 약 1년 만에 드디어 두 발로 땅을 디딜 수 있었다. 한두 걸음씩이나마 걸을 수도 있게 됐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신경외과 과장은 “하태림씨가 몸을 움직이고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그렇게 열심히 찾던 하나님이 정말 계시기는 한가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하나님은 실재하신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