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시대 기업 혁신 ‘예술’ 에서 길을 찾다

입력 2013-11-19 18:18 수정 2013-11-19 22:01


석재 단열재를 생산하는 스웨덴의 파록(PAROC)사는 2006년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해 이례적으로 노조와 경영진이 합심해 배우, 안무가, 사진작가 등 예술가들을 초빙했다. 이들은 1년 동안 공장에 상주하며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작업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이를 본 직원들은 자존감을 되찾았고 회사의 주인이란 의식도 갖게 됐다. 프로젝트 진행 뒤 연간 생산효율성이 24%나 향상했다. 이때부터 이 회사는 다양한 예술적 개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스페인의 산업용 실리콘을 만드는 중견기업 실람(Silan)은 지난해 예술가 12명과 사내 직원을 중심으로 프로젝트 팀을 구성했다. 3D프린터 상용화에 맞춰 새로운 실리콘 활용 방법을 탐색했다. 예술가들은 사내 연구진이 생각지 못했던 상용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예술의 힘을 빌려 기업을 혁신한다? 국내에서는 글로벌 게임업체 넥슨 코리아 등 일부 국내 기업이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은 낯설다. 반면 스웨덴 영국 스페인 등 유럽에선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추진되고 있는 기업 혁신 모델이다. 과거 기업이나 정부가 조직의 기술적인 기능 개선에 주력했던 것과 달리 구성원 개개인의 열정과 감성을 예술로 터치해 조직 역량을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문화체육관광부 국제포럼 ‘기업혁신, 예술에서 길을 찾다’를 위해 내한한 전문가들을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먼저 만났다. 스웨덴의 예술적 개입 기획 단체 ‘틸트(TILLT)’의 창립자 피아 아레블라드는 파록사 등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다. 틸트는 혁신을 꾀하는 기업에 어울리는 예술가를 찾아 연결시키고, 성공적으로 협업이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단체다. 현재 연간 프로젝트 100개, 단기 프로젝트 500여개를 진행하고 있다.

이 분야의 이론 전문가인 독일 베를린사회과학연구소 아리안 안탈 연구교수는 “예술적 개입은 어떤 분야, 어떤 규모의 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부 조직에 적용할 수도 있다”며 덴마크 국방부 사례를 들었다. 연극배우를 초빙해 고위급 장교들과 함께 인질 구출 상황을 다룬 시나리오를 쓰고 실제 연극에도 참여시키는 프로젝트다. 장교들이 현장의 긴장감과 작전 수행자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덴마크 국방부는 7년째 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안탈 교수는 “기존의 컨설팅은 인간의 머리에만 영향을 주지만 예술적 개입은 인간의 마음과 감정, 신체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영 컨설턴트들은 혁신 과정에서 생기는 조직의 저항을 부정적으로 보는 반면 예술가들은 이를 새로운 에너지로 재창조한다는 점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예술을 통한 조직 혁신이 왜 이 시대에 의미가 있을까. 영국 런던예술대학의 ‘혁신 인사이트 허브’ 센터장 지오나비 쉬우마 교수의 설명이 의미심장하다. 쉬우마 교수는 이제는 ‘노하우(know-how)’가 아니라 ‘노필(know-feel)’을 알아야 성공적인 조직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을 제시하며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자리매김한 인물이다.

“지난 100년간 우리는 조직의 기술적인 개선에만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하지만 21세기 기업은 새로운 도전 과제를 잘 극복할 수 있는 경영 시스템과 더불어 새로운 조직 및 인재 관리 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조직 경영에 있어 인간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휴머니즘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구현하는 데 최고의 도구가 예술입니다.”

이들은 서울 삼성동 올림푸스홀에서 20일 열리는 국제포럼에서 다양한 사례와 한국과의 협력 방안 등을 모색한 뒤 돌아갈 예정이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