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드러난 일제만행] 추가 공개 희생자 배상, 얼어붙은 한·일관계 새 불씨될 듯

입력 2013-11-19 18:07 수정 2013-11-19 22:05


새로 공개된 3·1운동, 일본 관동대지진 피살자 명부, 일제 강제징용(징병)자 세부명부가 현재 강제징용자 피해 배상을 놓고 냉랭해진 한·일 양국관계에 또 다른 변수로 등장했다. 최근 잇따르는 우리 사법부의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과 맞물려 외교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또 이처럼 중요한 자료를 주일대사관과 정부가 오랜 기간 방치한 것으로 드러나 정부의 기록물 관리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게 됐다.

◇정부, 과거사 반성 촉구=정부는 우선 우리 국민에 행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할 것을 일본 측에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19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이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얼마나 나쁜 일을 했는지 다시 한 번 나타났다는 점을 일본이 잘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관련 명부는 1953년 제2차 한·일 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방대한 자료인 만큼 명부 성격, 내용에 대한 상세한 분석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청구권협정 해석 놓고 양국 이견=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한·일 양국의 과거사 보상 문제를 규정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우리 정부 해석과 일본 정부의 대응이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는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해결됐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협정 체결 당시 우리가 배상청구를 제출한 8개 항목의 ‘대일청구 요강’에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항목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데 이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책임 인정 판결이 잇따라 나오면서 우리 정부도 기존의 ‘해결’ 입장에서 ‘유보’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현재는 일본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등에 대한 강제징용 피해 배상 사건의 대법원 확정 판결을 앞두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정부도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 재계가 최근 항의 성명을 발표하고 일본 정부가 여러 경로를 통해 우려를 표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양국 간 모든 과거사 보상 문제는 해결됐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일 또 다른 외교갈등 불씨=결국 이 문제가 한·일 간 외교적 갈등으로 본격 점화될지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와야 알 수 있다. 대법원이 일제의 포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개인의 피해 배상 청구권을 다시 한 번 인정할 경우 일본에 대한 강제징용 피해자는 물론 3·1운동 및 관동대지진 희생자 후손들의 배상 청구도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한·일청구권협정의 파기 여부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 정부의 외교적 갈등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 입장 변화에 강력 반발하면서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 또는 국제상사중재위원회에 회부할 경우 가뜩이나 차가운 한·일 관계는 추가적인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현재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법률적 재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