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드러난 일제만행] 순국상황 상세 기록… 유공자 발굴·독립운동사 연구 큰 진전
입력 2013-11-19 17:53 수정 2013-11-19 22:03
국가기록원이 19일 공개한 ‘3·1운동 피살자 명부’에는 3·1운동 당시 순국자 630명의 명단과 순국 정황이 잘 기록돼 있다.
1919년 3월 전국으로 번졌던 3·1만세운동 당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그들의 인적사항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독립운동가이며 사학자인 박은식(1859∼1925)이 1920년에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3·1운동 당시 피살자가 7509명으로 기록돼 있지만 지역별 희생자 숫자만 나와 있다. 조선총독부가 당시 작성한 ‘조선소요사건 관계철’에도 출동 상황과 사망 인원 등은 기록돼 있지만 사망자가 누구인지는 기재돼 있지 않다.
신원파악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3·1운동 순국자 중에서 공식적으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인원은 현재까지 총 391명에 불과하다.
이번에 공개된 명부에는 유관순 열사의 기록도 있다. 유관순 열사의 순국 당시 주소는 천안군 동면 용두리, 순국 당시 나이는 17세, 순국 장소는 서대문형무소로 기재돼 있다. 옥중에서 고문에 시달리다가 순국한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감옥에서 타살됐다고 나와 있다.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 유중식(당시 45세)을 포함해 19명이 천안군 병천면 병천리에서 왜경에 체포돼 같은 날 총살됐다는 기록도 눈길을 끈다.
3·1운동 피살자 명부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국가기록원이 명부 중에서 표본 조사한 경기(서울 포함) 지역의 경우 총 169명 중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경우는 53명, 포상이 보류된 경우가 8명이었다. 나머지 108명은 새로 확인된 인물들이다. 피살자들은 10대 2명, 20대 34명, 30대 47명, 40대 45명, 50대 이상 41명(미상 4명 포함) 등 전 연령층에 고루 분포돼 있었다.
충청지역의 경우 명부에 등재된 100명 중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이는 31명에 불과했다. 69명은 이번 명부에서 추가로 확인됐다. 천안군의 경우 29명 중 유관순 열사 등 13명은 독립장이나 애국장 등의 서훈을 받았지만 16명은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않은 인물들이다. 예산군의 경우도 명부에 포함된 10명 중 3명은 서훈을 받았지만 7명은 새 인물이다.
경남(230명), 전남(81명), 경북(39명), 강원(11명) 등 다른 지역도 조사가 진행되면 새로운 희생자들이 속속 드러날 수 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이번에 발견된 명부는 6·25전쟁 중에 조사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라며 “행정력이 미치는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조사가 진행됐기 때문에 3·1운동 피살자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명부에서는 일부 오류도 발견됐다. 유석 조병옥 박사의 아버지 조인원(당시 50세)이 유관순 열사 가족들과 같은 장소에서 총살됐다고 나와 있지만 조인원은 당시 3년 형을 받고 출옥했다. 충남 예산군의 의병장 이남규와 그의 아들 이충구, 노비 고수복(가수복의 오기로 추정)이 3·1운동 피살자 명부에 실려 있지만 순국 일시는 단기 4240년(1907년) 8월 19일로 기재돼 있다. 항일의병투쟁 과정에서 순국했으나 이 명부에 포함된 것이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김용달 수석연구위원은 “명부에 3·1운동 당시가 아닌 일제강점기 다른 시기에 순국한 이들이 일부 포함돼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 명부는 3·1운동 때 순국하신 분들의 구체적인 신분과 피살 시기, 당시 정황 등이 잘 기록돼 있다”며 “3·1운동 독립운동사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자료”라고 말했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