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드러난 일제만행] 3·1운동 630명·관동 대지진 290명 희생자 명부 첫 공개

입력 2013-11-19 17:45 수정 2013-11-19 21:59


3·1운동과 일본 관동(關東·간토)대지진 당시 피살자 명부가 사상 처음으로 공개됐다. 새로운 일제 강제징용(징병) 명부도 추가로 발견돼 일제 강점기 피해보상 문제에 새로운 변수가 될 전망이다. 독립유공자 발굴은물론 독립운동사 연구에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안전행정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승만정부가 1953년 작성한 ‘3·1운동 시 피살자 명부’(1권·630명) ‘일본 진재(震災) 시 피살자 명부’(1권·290명) ‘일정(日政) 시 피징용(징병)자 명부’(65권·22만9781명)에 대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 세 가지 명부 총 67권은 지난 6월 주일 한국 대사관 청사 신축에 따른 이사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다. 국가기록원은 이를 이관받아 4개월간 분석 작업을 거쳐 결과를 공개했다.

이들 명부는 1952년 12월 15일 제109회 국무회의에서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내무부에서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작성됐다. 1953년 4월 제2차 한·일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것으로 국가기록원은 추정했다. 3·1운동과 관동대지진 당시 피살자 명부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최초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과거사 증빙 자료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는 게 학계의 평가다.

‘3·1운동 시 피살자 명부’에는 읍·면별로 630명의 희생자 명단과 나이, 주소, 순국 일시·장소·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3·1운동 순국자로 공식 인정된 독립유공자는 391명이어서 이번 피살자 명부 발견으로 그 수가 2배 가까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명부에는 유관순 열사가 충남 천안군 병천면 병천리에서 “3·1독립운동만세로 인해 왜병에 피검돼 옥중에서 타살당함”이라고 기재됐다.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 유중식(당시 45세)과 어머니로 추정되는 ‘이씨’(40)도 기미년(1919년) 3월 1일 병천리(아우내 장터가 있는 곳)에서 왜병에게 검거돼 다른 주민 17명과 함께 총살된 것으로 나와 있다.

‘일본 진재 시 피살자 명부’는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된 한국인 명부로 290명의 명단과 인적사항, 피살 정황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일정 시 피징용(징병)자 명부’는 65권에 22만9781명의 명단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작성된 피징용자 명부 중 가장 오래된 원본 기록이다. 1957년 한국 정부가 작성한 ‘왜정 시 피징용자 명부’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생년월일이나 주소 등이 포함돼 있다.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은 “전국적인 정부조사 결과인 데다 주소나 생년월일까지 포함됐을 정도로 세세해 앞으로 피해보상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