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당 능력은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드러난다

입력 2013-11-19 18:19

예산안 법정시한 넘기면 국회의원 세비 받을 자격 없다

헌법 54조 2항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월 1일부터 회계연도가 시작되니 다음 달 2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끝내야 한다.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이 2주도 남지 않았는데 국회는 지난해 결산안 심사도 끝내지 못했다. 결산안은 국회법에 따라 9월 정기국회 개회 전인 8월 말까지 처리했어야 했지만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의혹 등을 둘러싸고 여야가 대치하면서 손놓고 있었던 탓이다. 결산심사가 늦어지면 연쇄적으로 예산안 심사가 지연되기 때문에 법정시한은 물론 올해를 넘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헌정 사상 초유로 준예산을 편성하는 이른바 ‘한국판 셧다운(정부 폐쇄)’ 상황이 올 수 있다.

법을 만드는 기관인 국회가 스스로 법을 허투루 생각해 지키지 않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다. 2003년 이후 지난해까지 10년째 예산안 법정시한을 지키지 않았으니 오히려 법정시한을 지키는 게 이상한 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여야는 올해 5월부터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예산안이 법정시한 48시간 전까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심사가 끝나지 않으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도록 했다. 그러나 헌법도 무시하는 판에 하위법인 국회법을 지킬지 알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년 예산안을 국회가 심도 있게 검토해 새해 시작과 함께 경제 살리기와 민생을 위한 사업들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제때 처리해 달라”고 호소했다. 애가 타는 것은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새해 예산안은 내년 7월부터 시작되는 기초연금과 4대 중증질환진료비 지원금 등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선 복지예산들이 포함돼 있다. 회복조짐을 보이는 한국 경제호에 기름을 부을 경제 살리기 관련 예산들도 다수 있어 온 국민들에게 영향이 미친다. 정부가 혈세를 낭비하지는 않는지, 재정이 더 필요한 곳은 없는지 그 어느 때보다 정밀하고 깐깐한 심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예산·결산 심의는 국회가 가진 3대 권한 가운데 하나다. 이처럼 막중한 의무를 팽개치고 소모적인 정쟁만 한다면 ‘국회 무용론’, ‘국회의원 추방론’이 나와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결산안과 예산안의 늑장·졸속심사를 막는 방법은 예결위를 상설화하거나 상임위로 전환하는 것이다. 다른 상임위를 겸직하면서 1년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특위로는 책임성이 부족하고 전문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가 결산보고서만 1000여 쪽에 달하고, 360조원에 달하는 예산안을 심의하려면 전문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예산안 심사 막바지에 끼어드는 쪽지예산(지역구 민원예산)을 없애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상임위 전환은 필요하다. 여야는 올해 초 대선공약인 예결위 상설화를 포함해 예산심사 제도를 쇄신하겠다고 했지만 말뿐이었다. 예산안 법정시한을 지키지 못하면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니 국회의원 세비도 주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