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매일 우리 삶을 사랑의 꽃으로 채운다

입력 2013-11-19 17:23


사랑/맥스 루케이도 지음, 박혜경 옮김/아드폰테스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사랑의 첫 번째 정의다. 미 기독교출판협의회(ECPA) 선정 골드메달리언 상을 7차례 수상한 저자는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요일 4:19)에 생긴다고 단언한다. 책은 ‘사랑의 장’으로 불리는 고린도전서 13장을 풍부한 예화로 풀어낸 해설서다.

그가 내세우는 사랑의 원리는 일명 ‘747 법칙’이다.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7)가 근거다. 저자는 크리스천이 자주 저지르는 오류의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단 말이지? 오케이. 그렇게 하고야 말겠어.” 크리스천은 이렇게 이를 악물지만 현실에서 좌절한다. 좌절의 이유는 하나님 사랑을 느끼지 못해서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랑을 받고서야, 느끼고서야 사랑할 수 있다. 더 많이 사랑하고 싶다면 자신이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의 자리에 서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의 첫 발자국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다. 사랑의 전제조건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경험하라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 삶을 매일 한 아름 꽃으로 채운다. 매일 그 꽃다발을 받으면 마음의 상처를 받아도 우리 삶은 하나님의 사랑 ‘꽃’으로 넘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서문에서 “하나님 아버지, 인간의 언어로 당신의 사랑을 표현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당신의 사랑을 표현하려고 발견한 기쁨은 엄청납니다”라고 했다.

사랑의 방법은? 고린도전서 13장을 제시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독자라면 이렇게 말할 법하다. ‘말이야 쉽지.’ 루케이도 역시 고백한다. “내가 목회하는 교회보다 다른 교회 설교가 더 좋다고 하면 질투심이 불타올라요.” 그럼에도 끊임없이 하나님 사랑을 기억하며 사랑하라고 한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랑이 일으키는 기적을 생생한 사례로 묘사한다. 1954년 프랑스 파리. 한 풋내기 신문기자 엘리 위즐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프랑수아 모리악을 인터뷰하러 간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모리악은 위즐의 질문을 받기도 전에 예수의 십자가와 구원 이야기를 끝없이 이어갔다. 1944년까지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던 위즐은 이야기를 듣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10년 전 유대인 어린이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경험했던 것보다 수천 배, 아니 육백만 배 더 큰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린이들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모리악은 문을 박차가 나간 위즐을 다시 붙잡는다.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모리악은 위즐에게 책으로 써보라고 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유대인 학살의 기록 ‘밤’이 나오게 된 뒷얘기다.

위즐은 모리악이 숨진 1970년까지 그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저자는 인내심 덕분에 두 사람은 대화를 했고 친구가 됐고 영원한 우정을 나눴다고 설명했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 그러나 사랑을 할 때 유의해야 할 점도 있다. 무례히 행해서는 안 된다. 예수가 그 표본이다. 예수는 부드럽게 문을 두드리고 문지방을 넘는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계 3:20) 부활한 예수가 엠바오로 가는 길에 두 제자를 만났다. 예수는 제자들이 마땅히 자기를 환대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제자들이 먼저 “청하자 그때서야 집안으로 들어갔다.”(눅 24:29)

이 책은 2003년 나온 초판 ‘A Love Worth Giving’의 개정증보판이다. 초판에 없던 ‘사랑에 관한 생각’이 부록으로 실렸다. 사랑에 대한 저자의 요점을 16개로 나눠 묵상하고 큐티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미 복음주의 계열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저자의 책은 전 세계 8000만명의 독자에게 읽히고 있다. 미 애벌린크리스천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과 성서학을 전공한 그는 1988년부터 미 텍사스주 샌안티오오크힐스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