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하태림 (3) “만약 하나님이 고쳐주시면 무슨 일을 할겁니까”

입력 2013-11-19 17:07 수정 2013-11-19 21:13


아내가 떠나고 여동생은 내 병간호를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동생은 뱃속에 손가락을 넣어 돌같이 굳은 대변을 빼내는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짜증도 받아줬다. 너무 힘들 때면 화장실에서 울고 나와 마음을 추스르고는 날 보고 다시 웃었다. 천사 같은 아이였다.

병원비 때문에 어머니는 매달 땅을 팔아야 했다. 돈이 필요해 급하게 내놓은 땅은 제값을 받기 어려웠다. 가세는 점점 기울었다. 어머니는 물에다 밥을 말아 드시고 밤마다 교회로 가셨다. 밤새 “내 아들 살려 달라, 일으켜 달라”고 기도하시고는 새벽에 돌아와 또 밥 한술 물 말아 드시고 밭으로 나가셨다. 매일 그렇게 나를 위해 일하고, 기도하기를 반복하셨다.

내가 살아 있는 것이 가족들에게 민폐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입양 보냈고, 아내도 떠났으니 이제는 내가 떠날 차례라고 생각했다. 손가락 하나조차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은 혀를 깨무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와 두 살배기 딸, 형제들이 마음에 걸려 망설이게 됐다. 혓바닥이 수만 갈래로 찢어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이 힘들게 했다. 밤마다 베개는 축축이 젖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아침에 일어나면 뺨이 쓰라릴 정도였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던 중 어느 날 병원 복도에서 흘러오는 노랫소리를 듣게 됐다. “노엘 노엘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병원에 봉사활동을 나온 인근 교회 청년들이 부르는 찬양이었다. 동생에게 병실 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했다. 삭막하던 일상에서 들은 찬양은 왠지 모르게 마음에 평안을 줬다. 문이 열린 걸 보고 청년들이 병실로 찾아왔다. 회복을 위한 기도와 함께 꽃을 선물로 주고 갔다. 그 후 청년들은 1주일에 한 번씩 내 병실을 찾아와 찬양을 불러주고 격려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만약 하나님이 고쳐주시면 무슨 일을 할 거냐”고 물었다. ‘만약’이라는 단어가 가슴을 울렸다. 간절한 마음에 “주님의 증인이 되겠다”고 했다. 나를 위해 매일 기도하는 어머니가 믿는 그 하나님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아주 작지만 ‘혹시나’하는 희망이 생겼다. 당시 병원에서는 주일마다 환자들을 위해 병원 지하식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양 팔과 다리에는 깁스를 하고, 척추뼈가 자리를 잡도록 몸에 추를 달아 놓은 상태라 혼자서는 예배당에 갈 수 없었다. 동생에게 침대째 끌어 예배당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 간호사들이 쫓아왔다. 움직이면 안 된다고 했다. 그들에게 “내 몸 상태가 나빠져도 지금보다 더 나빠지겠느냐. 그냥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예배당에 도착했지만 일어날 수 없었기에 천장만 바라봤다. 하지만 하늘에서 하나님이 날 보실까 간절한 마음에 기도했다. “오른손만이라도 낫게 해주십시오. 절뚝거려도 좋으니 걷게만 해주십시오. 제발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그때까지만 해도 ‘믿음’만으로는 고통을 이겨내기 힘들었다. 담배가 잠시나마 근심을 덜어줬다. 당시 환자 중 나만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내 상황을 안쓰러워했던 병원 측은 이런 ‘일탈’을 눈감아줬다. 한날도 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병실 문이 열리고 청년 찬양팀이 들어왔다. 예정에 없던 방문이었다. 지나가다 생각이 나서 들렀다고 했다. 그중 한 여학생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하루도 안 빠지고 형제님이 회복하기를 기도했다”며 “건강해지면 주의 증인된 삶을 산다더니 몸에 안 좋은 담배를 피우면 어쩌느냐”고 꾸짖었다. 그날 이후 10년 가까이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본격적으로 하나님께만 의지하기로 결심했다.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