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 아이파크 주민은 특급호텔로 2년전 포이동 판자촌 주민은 컨테이너로

입력 2013-11-19 04:58


지난 16일 서울 삼성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102동 1층 로비에 강남구청 관계자 10여명이 허겁지겁 모여들었다. 전례 없는 헬기 충돌 사고가 발생한 지 1시간여 만이다. 피해를 입은 아파트 8가구 주민 32명의 임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로비에 앉아 부지런히 인근 특급호텔들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해외 관광객이 많은 주말에 강남 한복판 특급호텔의 당일 예약이 쉬울 리 없었다. 20여분간 이들이 여기저기 전화를 거는 사이 현장 책임자로 보이는 간부 공무원이 도착했다.

그가 “호텔 예약은 어떻게 됐느냐”고 묻자 직원들은 “빈방이 많지 않아 오크우드 호텔과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4개씩 방을 나눠 잡으려 한다”고 답했다. 이 간부는 “그러면 21층에서 24층 사이 주민은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나머지는 오크우드 호텔에 모시라”면서 “현장은 주택과에서 챙기고 혹시 모르니 아파트 안전 문제는 구조기술사를 불러서 주민들 모시고 안내하라”고 지시했다. 이들은 주민들을 지칭할 때마다 “이분들”이라며 깍듯한 존칭을 썼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다 부근에 저렴한 숙박시설도 많은데 왜 비싼 특급호텔에만 연락하는지, 비용은 어떻게 부담하는지 물었다. 한 관계자는 “숙박비는 어떻게 처리할지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하더니 이내 “(방이) 다 찼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에겐 누가 낼지 모르는 방값보다 방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걱정인 듯했다.

2년5개월 전에는 같은 공무원들의 일처리 방식이 사뭇 달랐다. 2011년 6월 12일 삼성동 인근 포이동 재건마을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판자촌 96가구 가운데 75가구가 전소됐다. 270여명 주민들은 가재도구 하나 챙기지 못하고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다. 임시 숙소가 없어 3층짜리 망루 형태의 컨테이너 마을회관에서 1차 복구가 시작된 8월 2일까지 두 달 가까이 지냈다. 컨테이너 시설에 물이 끊겨 양재천에서 물을 길어다 썼고 식사는 대한적십자사 ‘밥차’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다. 정신적 충격을 받은 어린아이들은 대학생 자원봉사자 30여명이 돌봤다. 당시 강남구청은 화재 다음 날 주민들의 임시 거처를 인근 구룡초등학교 체육관에 마련했다.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피해 주민들의 임시 숙소는 구청 직원들이 전화를 걸기 시작한 지 30여분 만에 특급호텔 두 곳에 마련됐다. 피해 주민들은 오후 1시쯤부터 호텔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숙박비는 일단 LG전자에서 모두 부담한 뒤 추후 보험 처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가구당 하루 숙박비만 30만∼50만원이나 되지만 서울 마천루 주민들의 임시 숙소를 해결하는 데는 채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