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용백] 國史, 가족史, 개인史
입력 2013-11-18 18:12
한국사 교과서 관련 근·현대사 기술(記述)을 둘러싸고 좌우(左右) ‘편향성’ 논쟁이 확산되는 상황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대다수 한국사 교과서가 현대사 이슈를 ‘좌 편향’적 시각에서 기술했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상당수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반미·친북 정서를 부추긴다는 주장이다.
반면 야당들은 정부가 친일·독재를 미화시키려 하고, 이를 위해 한국사 교과서 검정(檢定)제를 국정(國定)제로 바꾸려는 등 ‘우편향’을 노골화한다면서 공격한다. 역사학자들이나 관련 시민단체들도 성향에 따라 갈려 대립하는 양상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 논쟁의 핵심은 친일·반민족, 분단 현실 속 좌우 대립, 민주와 독재 문제다. 논쟁은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친일·반민족 문제에서 격돌한다. 이 문제는 여전히 국민들을 괴롭히고 혼란스럽게 한다.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 개인, 친족, 가족, 이웃이 직간접적으로 얽히고설켜 모두가 가해자고 피해자가 돼 있기 때문이다.
역사 사실에 다양한 시각 불가피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한국사 교과서 파문,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과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임명 등으로 역사기술의 퇴행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커지고 있다.
‘우편향’ 논란의 중심인 유 위원장과 이 원장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적극 지지했던 인물들이다. 정권을 잡은 세력이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통해 자기편 사람들에게 자리 배분을 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를 관장하는 직책에는 적어도 편향성이 덜하고 주장들을 조화롭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선발해야 합당하다. 개인사도, 가족사도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실망스럽게도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두 사람의 그동안 처신이나 가족의 내막은 상식을 벗어난 것들이 많다. 쉽게 납득되지 않는 개인사·가족사에 매몰된 그들의 역사관과 그 역사기술을 어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사기(史記)’의 저자인 중국 전한(前漢)시대 역사가 사마천(司馬遷·BC 145?∼BC 86?)은 시공을 초월해 동·서양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그도 유교적 가치관과 자기 판단에 기초해 각 사안에 대한 역사기술의 정도를 달리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는 스스로의 편협함과 치열하게 싸웠고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공감했기 때문에 그의 저서가 빛을 발한다.
한국사 교과서는 광복 후 1973년까지 검정제로 발행됐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維新)정신’을 반영해야 한다면서 이를 국정제로 바꿨다. 이후 20여 년간 논쟁을 벌여 2003년이 돼서야 검정제가 다시 시작됐다.
지금의 중·고교 ‘역사’ ‘한국사’ 교과서가 검정제로 발행된 건 3∼4년밖에 안 됐다. 이를 다시 과거 숱한 논란을 거슬러 원점인 국정으로 돌아가자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학계는 국제적으로도 독재·저개발 국가 몇 곳을 제외하고는 국정 발행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아전인수식 획일적 記述은 안 돼
임기 첫해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부친과 그 정권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의도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시비(是非)가 이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국사, 가족사, 개인사가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로 뒤섞여서는 올바른 역사적 기술과 평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럴 경우 미래에 다른 성향의 정권이 다시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수정하려 할 것이다. 이런 소모적 갈등을 야기해 사회와 국민을 혼란스럽게 할 이유가 없다.
아전인수식 역사 인식과 기술을 둘러싼 갈등을 보면 통일대한민국의 역사기술 문제를 둘러싼 좌우 갈등은 얼마나 첨예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김용백 편집국 부국장 yb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