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첫 시정연설] 수개월 대립 ‘정치 현안’ 국회로 넘겨 국면 전환
입력 2013-11-18 17:52 수정 2013-11-18 21:55
박근혜 대통령은 18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여야가 수개월간 대립해온 핵심 정치현안 해결의 공을 모두 국회로 던졌다. “여야가 합의하면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말로 야당이 요구한 국가정보원 개혁특위 구성과 국가기관 선거개입 의혹 특검 문제를 ‘청와대·정부 대(對) 민주당’이 아닌 ‘새누리당 대 민주당’ 구도로 바꿔놓았다.
박 대통령은 여야 합의 수용 의사를 표명하면서도 “사법부 판단에 따라 반드시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검찰의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수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기존 ‘원칙론’을 그대로 유지했다. 국민에게는 “정치의 중심은 국회이며 국회 안에서 논의하지 못할 주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국회를 존중하기 위해 매년 정기국회 때마다 직접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갈 것”이라는 약속으로 ‘자세를 낮추는 대통령’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20년간 여의도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 박근혜’의 전략가적 노련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당초 예상했던 수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정치현안 부분을 언급한 박 대통령 시정연설에는 야당의 대여(對與) 강경투쟁 명분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로 대변되는 새 정부의 국정운영 전념 행보에 힘을 싣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민주당에 대해 “이제 정치권도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길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간접 비판했다. 더 나아가 “대선을 치른 지 1년이 돼가고 있는데 지금까지도 대립과 갈등이 계속되는 것을 대통령으로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이젠 대립과 갈등을 끝내고 정부의 의지와 사법부의 판단을 믿고 기다려줄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미 끝난 일’을 놓고 반목을 조장해선 안 된다는 경고인 셈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 이후에도 민주당은 ‘양특’(특검·특위)을 고수하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청와대는 공식적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야당의 비판에 대해 “따로 특별한 말을 하지 않겠다”고만 했다. 이 수석은 박 대통령이 특위 수용 가능성을 밝혔다는 해석에 대해선 “특별하게 어떤 사안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은 아닌 것 같다”고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야당에 양보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를 했다고 보는 기류가 감지된다. 정치권 합의를 국민의 뜻으로 알고 수용하겠다는 입장 자체가 청와대 참모들의 예상을 뛰어넘은 파격적인 스탠스라는 입장이다. 또 민주당이 줄곧 박 대통령에게 입장을 요구해 내심 불편했는데 시정연설을 계기로 부담을 일정 부분 덜었다는 분위기도 파악된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하고 싶었던 얘기를 남김없이 한 걸로 보인다”며 “당분간 (정치 현안에 대해) 밝힐 입장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야당의 비판적인 반응과 관련해 “그런 이견들을 여야가 국회에서 합의해 달라고 호소한 것 아니겠느냐”며 “대통령은 취임 이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경제 활성화 달성에 매진할 것”이라고 했다.
향후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정치적 이슈에 대해선 가능한 한 언급을 하지 않고, 국정과제 이행에 집중하면서 ‘마이 웨이’를 굳힐 것으로 전망된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