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학교 앞 호텔’ 사업 기회 준다는데…

입력 2013-11-18 17:51 수정 2013-11-18 22:14


교육당국이 내년부터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에 들어서길 희망하는 숙박업체에 사업계획 설명 기회를 주기로 하면서 학교 앞 호텔 건립에 물꼬가 트였다. 그러나 지금도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 유해시설 금지 해제율이 62%나 돼 자칫 호텔을 필두로 유흥·단란주점까지 들어설 초석을 제공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는 숙박시설이 학교 인근 건립을 원하면 해당 사업체가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에 직접 사업계획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학교환경정화위 운영방안 개선안’을 연내에 마련해 내년 초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18일 밝혔다. 지난 9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학교 인근에 들어서려는 호텔의 애로사항을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검토토록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기존 위원회 심의는 위원들이 학습권과 학교위생 저해 요소를 판단해 그 결과를 민원인에게 통보하는 방식이었다. 이 개선안은 기존 심의에서도 높았던 유해시설 금지 해제율이 더 높아지도록 부추길 소지가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시의회 윤명화 의원은 “이번 개선안으로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 유해시설 금지 해제율은 더 높아질 게 불 보듯 뻔하다”며 “유해시설 허용 심의를 본래 취지에 맞게 더 엄격히 할 필요가 있는데도 교육부가 반대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의원이 서울시교육청에서 받은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현황 및 학교환경위생정화위 심의 결과’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1년∼2013년 9월 말)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 유해시설 금지 해제를 요청하는 심의 건수가 2189건이나 되며 이 중 1353건(61.8%)의 유해시설이 해제됐다. 연도별로 조금씩 줄고는 있지만 여전히 50%가 넘는 해제율을 기록했다.

서울 남부·강남·동작·중부 교육지원청의 경우 3년간 유흥·단란주점의 해제율이 85%를 웃돌아 사실상 학교 주변에 유흥·단란주점 입점을 대거 허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높은 해제율에 대해 “민원인들이 인터넷에 공시된 심의 결과를 보고 예전에 심의됐던 곳 중 유해금지 해제 판정을 받은 곳 주변으로 신청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에 대해선 “10분 이내로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미 숙박시설 수요가 많은 지역인 서울중부교육지원청, 부산남부교육지원청, 인천남부교육지원청은 다음 달 20일까지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특히 서울중부교육지원청은 대한항공이 7성급 한옥호텔 건립을 추진했던 지역 내 학교들을 담당하는 곳이다. 대한항공은 2008년 옛 미국대사관 직원숙소 부지를 사들여 관광호텔, 공연장, 갤러리 등을 갖춘 복합문화시설을 조성하려 했지만 주변에 덕성여중·고, 풍문여고 등이 있어 무산됐었다.

덕성여중 백영현 교장은 “사업체에 설명할 기회를 주는 것까지 막을 순 없겠지만 만약 이것이 영향을 미쳐 허가로 이어진다면 그땐 얘기가 다르다”며 “호텔 시설 하나 때문에 교육환경은 크게 저해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