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발급절차 대폭 강화… ‘뚝딱 개설’ 어려워진다
입력 2013-11-18 17:34
앞으로는 국내 금융권도 외국계 금융권처럼 통장 신규발급 절차가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금융소비자가 단기간에 여러 개의 통장을 만들거나, 신설법인이 한꺼번에 많은 신규 통장을 만드는 일이 제한되는 것이다. 단기간에 많은 통장을 개설한 이의 정보는 대포통장 의심계좌로 분류돼 금융권에서 공유한다. 금융당국은 농협을 활용하던 대포통장 사기범들이 새마을금고와 우체국으로 발길을 돌린 것으로 파악, 내부통제 확립에 나섰다.
◇대포통장 온상 ‘풍선 효과’=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그간 대포통장의 주요 발급처로 지목받았던 농협(농협은행·단위조합)에서는 대포통장 발급 비중이 줄었지만, 새마을금고와 우체국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다.
농협 단위조합의 대포통장 발급 비중은 2011년 9월부터 지난 6월까지 전체의 44.5%를 기록했었다. 하지만 올 하반기 들어서는 금감원의 집중 지도에 따라 지난달까지 33.9%를 기록하며 비중이 소폭 감소했다.
반면 새마을금고와 우체국은 같은 기간 대포통장의 발급 비중이 각각 4.4배, 9.7배로 폭증했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새마을금고에서 개설된 대포통장 계좌 비중은 2.5%(933건), 우체국은 1.5%(569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서는 지난달까지 각각 11.0%(724건), 14.6%(958건)로 비중이 치솟았다. 금감원 양현근 서민금융지원국 선임국장은 “사기범들이 금융당국과 언론의 시선이 집중된 농협을 피하고, 서민금융기관 중 점포가 많은 곳들을 택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새마을금고와 우체국은 금융당국의 감독이 직접 미치지 않는 비은행권이라서 대포통장 근절책 시행에 어려움이 있다.
양 선임국장은 “새마을금고와 우체국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금융당국만큼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해외 사례를 참고해 통장 개설 과정을 강화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케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의 고객을 파악하라”=양 선임국장이 말한 해외 사례는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씨티은행 등 외국계 금융권의 ‘KYC(Know Your Customer·고객확인의무)’ 정책이다. 외국계 금융권은 신규 고객을 등록할 때 신원 확인은 물론 통장 개설 목적까지 따져 물어 자금 세탁·테러 등 불법 자금이 금융권으로 유입되는지를 꼼꼼히 살피고 있다. 이 때문에 계좌를 만드는 데 한 달가량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다.
개설은 물론 통장 운용 과정도 우리나라보다 외국계가 까다롭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입금액이 없어도 통장 개설이 가능하지만 미국의 은행들은 보증금 형식의 일정 잔액이 있어야 계좌가 유지된다. 잔액이 일정액에서 미달하면 계좌 사용료 명목으로 수수료도 물게 된다.
금감원은 외국계의 모범 사례들을 뽑아 연말까지 전 금융권에 모범규준으로 제시할 방침이다. 다만 불편을 감안해 통장 개설 소요 시간을 갑자기 늘리기보다는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단계를 거칠 계획이다. 양 선임국장은 “의심계좌의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사기범은 반드시 처벌된다는 인식을 심겠다”고 강조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