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현덕 ‘광명을 찾아서’ (창비)

입력 2013-11-17 18:53 수정 2013-11-17 19:06


현덕(1901∼?)의 본명은 현경윤이다. 현덕이 태어난 서울 삼청동 별장은 민영익 수하의 무관이었던 조부의 사교 장소였다. 상당한 재력을 축적한 집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하다 가산을 탕진한 부친 때문에 현덕은 어렸을 적 생활이 고달팠다. 그만큼 그는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가 컸고 그의 문학작품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서울 제일고보를 중퇴하고 막노동을 할 때 김유정을 만나 문단에 발을 들이게 된 현덕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남생이’가 일등 당선하면서부터다. 이후 40년대까지 뛰어난 단편과 동화 등을 세상에 내놓지만 6·25 전쟁 때 월북했기에 그는 한동안 잊혀진 작가였다. 그의 유일한 장편 소년소설 ‘광명을 찾아서’는 49년 동지사아동원에서 출간했다는 말만 전해질 뿐, 실체를 알 수 없었던 작품이었다.

얼마 전 고서수집가로부터 “어렵게 ‘광명을 찾아서’를 손에 넣었으니 한번 봐 달라”는 연락을 받은 문학평론가 원종찬에 의해 복간된 이 작품은 불우한 소년 창수가 빛을 갈구하는 이야기이다. 창수는 부모 없이 삼촌네 집에 사는 처지인데 숙모가 힘겹게 마련한 후원회비를 도둑맞고 얼떨결에 거짓말을 한 것을 시작으로 나쁜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황망한 처지에 내몰린다. 급기야 소매치기 일당에 휘말려서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창수는 한 가닥 양심의 소리 때문에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우두두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창수는 가만히 입속말로 ‘용서하여라, 용서하여라. 그리고 얼른 나아 일어나라’하고 그 자리를 떴습니다. 돌아서 비 내리는 밤하늘을 쳐다보며 걸을 때 그의 얼굴에는 무수한 물방울이 흘렀습니다. 그것은 단지 빗방울만이 아니었습니다. 끝없이 끝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144쪽)

이 작품은 오래전에 쓰였지만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고 끝없이 이어지는 세상살이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