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준섭] 혐한시위를 어찌 할 것인가
입력 2013-11-17 18:38
화면에 앳돼 보이는 중학교 여학생이 확성기를 들고 등장한다. 그런데 그 확성기를 통해 나오는 그녀의 말은 앳된 모습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무지막지한 것들이다. 재일한국인에 대한 비속어를 연발하며, 너희들이 너무나 증오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으니 하루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난징대학살이 아니라 쓰루하시 대학살을 실행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인터넷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재일한국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영상의 하나인 ‘쓰루하시 대학살’이라는 영상의 내용이다. 오사카의 쓰루하시는 도쿄의 신오쿠보와 함께 재일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며, 한류숍도 많이 있는 지역이어서 현재 헤이트 스피치를 일삼고 있는 재특회(재일한국인의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의 회)가 주로 활동하는 지역이다. 이 스피치도 재특회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뤄진 것이다.
필자는 이 영상을 보는 순간 유대인을 말살하자고 선동연설을 하던 히틀러의 모습, 간토대지진 때 눈을 부라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발음이 어려운 일본어를 말하게 한 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면 학살했다고 하는 자경단의 모습을 떠올렸다. 또한 이 소녀의 불쌍한 영혼에 대하여 가엾음을 느낌과 동시에 그 주위에서 ‘옳소, 옳소’라고 외치는 어른들에 대해 큰 분노를 느꼈다.
물론 이와 같은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시위에 대해 양심적인 시민단체가 맞불 시위를 하면서 일본인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등 일본 사회가 자정작용을 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들의 행동에 의해 일본 사회가 악영향을 받고 있는 것 역시 분명하다. TV에서 방영되던 한류드라마가 급격하게 줄고, 연말을 장식하던 ‘NHK의 노래홍백전’이라는 프로에 꾸준히 출연하던 한국 가수가 지난해에 한 팀도 출연하지 못한 것에는 한·일관계의 전반적인 악화라는 배경이 있겠지만 혐한 시위의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한다면 얼마 전 도쿄에 갔을 때 들른 대형 DVD렌털숍에 있었던 ‘한류드라마’라는 이름의 특설코너가 사라지고 ‘아시아 TV드라마’라는 코너가 설치돼 있기에, 자세히 봤더니 실은 DVD의 대부분이 한류드라마였다. 추측건대 ‘한류드라마’라는 명칭에 과민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있는 과격단체들의 돌출행동을 우려한 DVD렌털숍 측이 이런 조치를 취한 것 같다. 이미 혐한 시위의 영향에 의해 한류드라마와 노래를 즐기고 싶어하는 일본인들의 자유가 침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재특회 등의 활동에 대한 일본정부의 대응은 매우 미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베 신조 총리는 참의원에서의 답변에서 “일부의 국가, 민족을 배제하는 언동이 있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으며, 다니가키 법무대신은 “우려를 참을 수 없다. 품격 있는 국가라고 하는 방향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등의 구체적인 조치는 현재까지 취해지고 있지 않다.
이들 단체의 행동은 한·일관계를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일본 사회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소프트파워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엄청난 손실을 안겨주고 있다. 서두에 소개한 중학생 소녀의 헤이트 스피치는 영어 자막이 달려서 현재에도 유튜브에서 계속 재생되고 있는데, 그 재생 횟수만큼 일본의 이미지는 실추되게 될 것이다.
재특회 등이 행하는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규제를 실행할 경우 일본 사회에 대한 악영향의 차단, 일본의 국제적 이미지 향상, 한·일관계 복원의 계기라고 하는 ‘일거삼득’의 효과를 보게 될 것임을 인식하고 일본정부는 행동에 나서주기 바란다.
김준섭 국방대 안보정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