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직윤리를 중시하지 않았던 고위직의 오늘
입력 2013-11-17 18:33
公私 구분 못하는 인사는 예외 없이 퇴출시켜야
국민들은 공직자에게 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한다. 같은 사안이라도 공직자와 일반인을 평가하는 잣대가 다른 게 일반적이다. 일반인과 달리 공직자는 업무 특성상 투명하고 깨끗하지 못할 경우 그 폐해가 국가 전체에 미치기 때문이다. 직위가 높을수록 그 정도는 심해지기 마련이다. 국회에서 국무총리, 감사원장,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를 실시해 검증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황찬현 감사원장,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지난주에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세 후보자 모두 이런저런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황 후보자는 본인 병역면제 및 위장전입, 탈세 의혹 등이, 김 후보자의 경우 장남 병역기피와 부동산 투기, 편법 증여 의혹 등이 제기됐다. 고위 공직자가 되려면 으레 이런 의혹들은 한두 개쯤 있어야 되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청문회를 앞두고 세 후보자는 미납 세금을 납부했다. 탈세만큼은 사실로 인정한 것이다.
법인카드를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문 후보자는 특히 문제가 있다.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 재직 시 아내와 아들 생일 등에 외식을 한 뒤 법인카드로 결제하고 이를 숨기기 위해 공무로 식사한 것처럼 허위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이렇게 규정을 어겨 법인카드를 사적 용도로 쓴 사례가 자그마치 4000여 차례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국회가 충분한 시간을 주었음에도 문 후보자가 이에 대한 반박 자료를 내지 못하는 걸 보면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특정업무경비를 사적 용도로 쓴 것이 문제돼 결국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문 후보자의 경우 액수가 적을 뿐 사건의 본질은 이 후보자와 다른 게 없다. 오죽했으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조차 “검증을 충분히 못했다”고 자인했을까. 때와 장소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기초연금 소신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도덕성으로 46조여원(내년도 기준)의 예산을 집행하는 보건복지 행정을 아무 문제없이 책임지고 이끌어갈 수 있을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숭례문 부실 복구에 대한 책임을 물어 변영섭 문화재청장을 경질했다. 일본에서 퇴폐업소에 출입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스스로 물러났다. 기관의 장(長)으로서 직무를 소홀히 하거나 부적절한 처신을 할 경우 그 책임을 엄하게 묻겠다는 박 대통령의 인사 철학을 읽을 수 있다. 이 원칙은 현직에 있는 공직자에게는 물론 공직자가 되려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일반 국민에겐 추상같은 법 적용이 고위 공직자에겐 ‘관행’이란 이름으로 면제되기 일쑤다. 세금을 내지 않아도, 석연찮은 이유로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위장전입을 해도 고위 공직자가 되는 데 별다른 장애가 되지 않는다. 이래서는 박 대통령이 뿌리 뽑겠다고 공언한 고위 공직자의 도덕불감증과 공직비리를 막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