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필교] 삶은 희망과 절망의 이중주

입력 2013-11-17 18:33


마음이 스산한 날, 따스한 감성을 충전하고 싶을 때는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가 제격이다. 올 가을에 본 영화 중 가장 큰 울림을 준 것은 클래식 음악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마지막 4중주’다. 지난 7월 개봉해 지금까지 상영되고 있는데, 예술영화로는 이례적이다.

25년간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현악4중주단 ‘푸가’에서 멘토 역할을 하던 첼리스트 피터가 파킨슨병이라는 진단을 받으면서 네 명의 단원들은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푸가’ 4중주단의 위기를 깊이 염려하던 피터는 40분간 연이어 연주해야 하는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을 마지막 공연에서 연주하자고 제안하는데….

스승과 제자, 부부, 옛 연인, 친구 등 개인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네 사람은 이를 계기로 25년간 억눌러 온 감정들을 드러내면서 갖가지 갈등을 빚는다. 현악4중주가 보통 4악장으로 이루어진 것과 달리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은 7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7개의 악장을 연결해서 쉬지 않고 연주해야 해 중간에 튜닝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특징. 쉼 없이 오랜 시간 연주하며 악기들 간에 서로 음정이 어긋나는 것도 감수해야 하는 이 곡에 빗대어 영화는 삶과 관계의 진실을 그려낸다.

수개월 동안 악기 연주 트레이닝을 받은 배우들이 실제 연주에 버금가는 연기를 해낸 점은 이 영화의 몰입도를 높였다. 특히 팀의 구심점을 이루는 비올라 연주자 ‘줄리엣’ 역을 맡은 여배우가 삶의 위기를 맞은 한 여성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해낸 연기가 돋보였다. 재활치료를 하며 혼신을 다해 마지막 연주를 해낸 피터가 새로운 첼리스트에게 역할을 인계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나를 둘러싼 관계들, 성공과 행복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는 이 영화의 포인트는 ‘인생은 독주가 아니라 협주’라는 것. 야론 질버맨 감독은 “오랜 세월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 사이에는 복잡한 갈등과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 불협화음조차 인생의 한 악장이며,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악장을 연주하고 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생겨나는 갈등과 오해, 그리고 화해를 거듭하는 우리의 삶은 오늘이란 악장에 담긴 희망과 절망을 연주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나는 주변 사람들과 어떤 연주를 해나갈까. 연주를 시작하기 전 먼저 관심, 돌봄, 배려, 경청, 존중, 수용이란 마음의 현을 튜닝해 본다.

윤필교 (기록문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