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統獨 전에 通獨 있었다

입력 2013-11-17 18:14 수정 2013-11-18 01:17

지난달 26일 독일 베를린 장벽박물관에서 만난 박물관 교육 담당 질케 에들러씨는 “한국에는 60년 넘게 북한에 있는 혈육의 생사도 모르는 이산가족이 많다”는 말에 “슈레클리히(schrecklich)”라고 했다. ‘끔찍하다’는 독일식 표현이다. 그는 “통일 이전 독일에선 비록 제한적이긴 했지만 동·서독을 왕래할 수 있었다”며 “남북한이 통일되기 위해선 인적·문화적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예외 없이 “남북이 통일되기 위해선 활발한 교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로를 알아야 통일을 앞당길 수 있고, 통일 후 후유증도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독일은 통일되기 이전 제한적이긴 했지만 동·서독 간 직접 왕래뿐 아니라 동·서독 간 이주도 끊임없이 이뤄졌다. 실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서독 지역인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목사였던 아버지의 임지인 동독지역 브란덴부르크주로 이주해 통일되기 전까지 동독에서 살았다. 동·서독 간 이주가 가능했던 대표적 사례다.

동·서독 주민 간에는 분단 시기에도 항상 연결의 끈이 끊어지지 않았다. 서신과 전화도 가능했다. 동독인들은 자유롭게 서독 TV 방송과 라디오를 시청했다. 통일 이전인 1985년 서독으로 이주한 동독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방송 시청 행태 조사에서는 조사 대상자의 94%가 동독에서 서독 TV를 시청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인적·문화적 교류는 동·서독 주민 사이의 정서적 교감을 가능하게 했고, 통일을 촉진시키는 밑거름이 됐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또 통일 이후 발생한 동·서독 주민 간 반목과 마찰을 완화시키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소개한다. 악셀 슈미트 괴델리츠 독일 동서포럼 이사장은 “나도 이모가 동독 지역인 드레스덴에서 살았지만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을 알고 있었다”면서 “통일이 되기 위해선 독일처럼 인적·물적 교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동독 출신으로 분단 직후 당국에 땅을 몰수당하고 서독으로 이주한 실향민 출신이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인적·문화적 교류를 활성화한 독일을 배우자는 지적도 나온다.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은 17일 “서독 정부는 분단에 따른 이산가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동독 치하에서 고통받는 주민들을 위해 교류와 협력을 매우 중요시했다”면서 “교류와 협력은 민족의 이질화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서독 정부는 판단했다”고 말했다.

베를린·모카우=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